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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9일차. 투병일기.


요양의 시작, 다시 찾아온 복통, 민감해진 몸, 약간의 두통


어제 퇴원을 하고 김포 엄마집으로 요양왔다. 당분간 이곳에서 요양하며 지낼 예정이다.  표현은 요양이지만 사실 이건 격리잖아. 응? 안그래?.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오로지 잡안에 있는 것들로만 생활해야 하니... 이것은 그야말로 격리. 하지만 격리라 생각하지 말고 요양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왠지 느낌부터가 틀리지 않은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기회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좀 내려놓고 그동안 쌓였던 피로들도 좀 내려놓고 내가 짊어졌던 짐들도 잠시 내려놓자. 물론 그로인해 누군가는 더 힘들어 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요양인거다. 


항암치료로 인해 떨어진 면역력이 나를 위험에 빠드려서는 안되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나쁜 병균과 못된 바이러스로 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한 요양인거다. 결코 누군가를 위한게 아닌거지. 면역력이 바닥까지 떨어진다는 D+10 부터 D+14까지는 말 그대로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 하니까. 이 기간동안에 행여 잘못돼서 몸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내가 힘든 것은 둘째치고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어 질테니까. 그리고 공포의 무균실은 정말 너무너무 가기 싫으므로. 그러니 이 기간 동안은 정말 조심해야 하고 이 기간 동안은 말 그대로 요양을 해야 한다는거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요양인거다.


그런데, 나를 위한 요양이 나를 위한 요양이 아닌 것 같은 이 기분은 왜일까. 요양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머랄까 방법의 차이랄까. 정도의 차이랄까. 어쨌거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요양이였다면 이곳 김포까지 와서 요양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거다. 명분으로는 늘상 감기를 달고 있는 시우와 연아를 피한다는 것이지만, 사실 그 녀석들과 함께 생활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활력소가 될 것이고 그거야말로 제대로된 요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해야 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난 그냥 이곳 김포로 오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난 그게 더 편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김포에 와서 요양을 하고 있다. 그것도 과잉 보호를 받으면서 말이다. 행여 감기에 걸릴까. 행여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을까. 행여 나쁜 병균이 나를 괴롭힐까. 행여 행여 행여 ....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너무나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호를 받고 있으니 이건 그야말로 과잉 보호다. 아무리 과하다 해도 당신께서는 이것이 과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므로 너무 과하니 적당히 하라는 얘기도 꺼내지 못하는 터다. 그러니 김포로 오지 않고 그냥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겠노라는 말을 차마 못하는 거다. 그리고 꼭 그뿐만 아니더라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서 남편인 나로써는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그 미묘한 감정과 복잡한 이해 관계와 생각들 때문에 발생하는 자그마한 파장들로 인해서도 집에서 요양하겠노라는 말을 차마 못하는 거다. 난 엄마의 며느리도 아내의 시어머니도 또 엄마의 또 다른 아들도 또 아내의 아주버님과 아내의 형님도 그리도 또 그 정점에 있는 우리 아버지도 모두 모두 사랑하고 그 모두의 생각을 함께 고려하고 그 모두의 의견을 받아 들이고 이해하며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난 지금 나를 위한 요양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양을 하고 있다.


*


병원에 입원하고 부터 아니 그 전이였던가. 아무튼 지속적으로 아팠던 배가 딱 그때부터 더이상 아프지 않았었다. 물론 등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오자마자 곧바로 복통이 다시 시작됐다. 이전부터 아프던 정확히 그자리가 이전부터 아프던 정확히 그 만큼의 크기로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배만 아프다가 이내 등도 아팠기 때문에 곧 등도 아파오지 않을까 하고 짐작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링거를 통해 수액을 공급받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약하거나 흡입했으니... 그랬으니 배의 이 아픔을 느끼지 못 했던게 아닌가 싶다. 퇴원하면서 약을 끊었으니 아팠던 배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게 어쩌면 당연한 것도 같다. 


그런데 퇴원후 먹고 있는 이 진통제는 왜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걸까. 그게 더 신기하다. 내일 병원에 가면 이 복통을 호소해야 하는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하는 걸까. 좋은 암 환자는 암으로 인한 고통을 견딜줄 알아야 한다는데. 그래야 의료진은 핵심이 되는 암을 치료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한다던데. 고통을 줄이는데만 치료를 집중하면 고통의 원인이 되는 암을 치료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한다던데... 아무튼 이런 고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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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후의 면역력은 대체로 D+7 부터 서서히 떨어진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사람마다 시기가 다 똑같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D+7 부터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해서 D+10에서 D+14 사이에 가장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은 D+9. 그래서일까 몸이 많이 민감해 진게 느껴진다. 확실히 느껴진다. 몸도 더 무거워졌고 무언가 모르게 멍해지고 집중력도 확실히 떨어졌다. 귀차니즘이 정점에 달해있고 기분도 다운된 상태다. 무거워진 몸 만큼 머리도 무겁고 그래서 인지 두통도 꾸준히 있다. 이 상태가 내일은 더 안좋아 질려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일 외래 진료 받아야 하고 피검사도 받아야 하는데... 아무튼 내일 되면 먼가 더 구체적이 되겠지. 


*


야외 활동을 한게 백만년은 됫듯한 기분이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기간도 짧지 않았으니 말이다. 불현듯 산책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완전 무장을하고 뒷산으로 향했다. 내복까지 포함하면 바지는 세벌을 입었고 상의는 다섯벌을 입었다. 그리고 마스크까지. 이렇게 중무장을 한건 감기에 걸리면 안된다는 엄마의 성화 때문이였다. 난 산 정상까지 올랐다. 이름도 없는 동네 뒷산이고 산 정상까지 10분만에 올라갔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고 정상은 정상인거다. 그러므로 난 아웃도어가 필요했다. 으응?


등산 인증! 


결론은 푸욱 잘 쉬고 있다. 엄마의 정성 담긴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있노라니 왠지 이 식단만으로도 약을 먹지 않아도 건강해 질 것만 같은 느낌이였다.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응원해 주는 이 많은 사람들 덕분에 벌써 완치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 모두 화이팅!! 

오늘의 투병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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