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식을 받은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봄은 여름을 불러왔고, 폭염이라 말할 정도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이제는 물러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 존재가 점점 뚜렷해 짐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거대세포바이러스에도 감염되고 세발이도 떠나보내는 등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이식편대숙주반응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식을 받은 후 정확히 2개월 만에 숙주병이 나타났다. 그로부터 2개월을 숙주병과 싸우면서 나는 또 이만큼 성장했고, 이만큼 선명해졌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발생한 이식편대숙주병

 이식 후 2개월이 지났을 즈음 떨어진 체력을 위해 가벼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자 했고, 가벼운 산행을 하고자 했다. 황룡산은 가볍게 오르기 좋았으며, 고봉산은 떨어진 체력을 회복시키기에 아주 적당한 운동량을 주었다. 자전거의 두바퀴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상쾌했으며, 자전거가 가르는 바람과 자전거 뒤로 흘러가는 구름은 내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는 듯했다. 그렇게 1주일 동안을 두발로 산을 누비고 두바퀴로 들판을 누볐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2개월여를 산과 들판 대신 침대와 벗 삼아야 했다. 2개월 전 숙주병을 만나고 부터 침대와 더욱 친해졌으며, 약의 갯수는 늘고 수량은 많아졌다. 그렇게 숙주병과 싸우는 동안 2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 피부발진, 놀랍도록 간지러웠다.

 처음에는 피부발진이었고, 그다음에는 위장장애였다. 그렇게 등장한 숙주병은 그 뒤로도 다양한 증상들을 동반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나를 귀찮게 만드는 것들뿐이였다. 구내염은 음식을 먹기 힘들게 만들었고, 구강건조증은 말하는 것을 무척 힘들게 만들어서 물통을 항상 들고 다니며 수시로 물을 마셔야만 했다. 설사는 음식을 맘대로 먹지 못하게 만들었고, 떨어진 입맛은 내 몸을 더욱 야위게 만들었다. 올라간 혈당 덕분에 음식 조절에 더욱 신경을 써야했고, 부종이라는 녀석은 내 얼굴을 퉁퉁 부어오르게 만들었다. 약해진 근골격계로 인해 허리는 더욱 아파졌고, 허벅지와 종아리와 발목은 수시로 아파왔다. 덕분에 찜질팩은 한동안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주었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몸의 컨디션은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극심한 몸살에 걸린 마냥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다가도 어느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숙주병은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진저리 나도록 괴롭혔다. 



이식편대숙주병 이겨내기

 숙주병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면역억제제와 스테로이드를 열심히 먹어야 한다는데, 이 면역억제제는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한다. 거대세포바이러스와 같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유라는군. 스테로이드는 부작용 폭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부작용을 동반하는데, 특히 근골격계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내 몸속에 남아 있는 근육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중이다. 면역억제제는 시간을 맞춰서 먹어야 하고 1시간 금식을 유지해야 해서 참 사람을 귀찮게 하는 녀석이다. 빨리 숙주병이 나아서 약을 끊어야 할텐데... 에휴.


 숙주병은 다양한 증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숙주병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된다. 특히 무기력함으로 컨디션이 뚝 떨어지는 시점이 되면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지더라. 게다가 복통, 매스꺼움등의 다른 증상들도 함께 동반되기 때문에 더욱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러니 숙주병을 이겨내기란 정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이 힘든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숙주병을 쉽게 이겨내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그저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내 면역체계가 완전체가 되기를 하릴없이 기다려야만 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시기가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답답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 숙주병도 다 지나가고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시기가 올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어리광은 집어치우고 숙주병 따위 별거 아니네. 라는 마음가짐으로 잘 이겨내는 거다. 


▲ 칠흑같은 어둠이 지나고 해가 떠오른다.

 나는 한겨울의 기나긴 밤을 지나왔고, 지금은 해뜨기 직전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숙주병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이제 곧 해 뜨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징그럽고 징그러웠던 숙주병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할 것이다. 그것이 림프종을 떠나보내기 위한 이별여행의 또 다른 한 발자국이 될 것이다.



이식편대숙주병에 대한 단상들.

  1. 생착이 너무나 잘 되었기 때문이란다. 내 몸에서 숙주병이 이렇게 활개를 치는 이유가 말이다. 그것이 이 지긋지긋한 숙주병이 결코 밉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생착이 잘 안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 일이 생기면 절대로 안되는거야. 그러니 지금처럼 생착이 너.무.나 잘 되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숙주병을 반갑게 반겨주어야 할 테다. 숙주병을 친구라 여겨야 할 테다. 원래 친한 친구일 수록 나를 좀 더 귀찮게 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친구가 자라고 자라서 정말 소중해 질 때 매몰차게 떠나보낼 테다. 흥

  2. 숙주병은 반항의 결과라 한다. 내 몸속에 들어온 골수가 여기는 내가 살던 집이 아니라면서 반항을 한다지. 그래서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게 숙주병이라는 군...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반항인지 모르겠다. 그 폭력의 결과로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암세포들이 두들겨 맞는다니 말이다. 이것 또한 숙주병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이래저래 숙주병은 참 고마운 존재인 거다. 그래... 나도 한창이던 시절에 반항 좀 했었지.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3. 이식 후 2개월이 지나서야 숙주병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2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나에게 준 거였어. 한동안은 숙주병이 안 생겨서 이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종잡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숙주병이 안 생겨서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는 얘기다. 숙주병이 생기는 비율도 그렇게 높지는 않은거 같았다. 안 생기는 사람이 더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나에게도 숙주병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을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숙주병 따위가 운명이라니...

  4. 그런데 난 왜 이렇게 많은 숙주병 증상들이 나타난 걸까.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오한, 오심, 구토, 복통, 설사, 무기력, 몸살, 피부발진, 구강건조, 구내염, 그리고 먼가 더 증상이 있었던 거 같은데...  거기에 스테로이드 부작용인 얼굴 부종과, 허리, 골반, 다리 통증 그리고 당뇨까지 추가..  흠 이러고도 나 아직 살아 있는 게 기적인가.

  5. 무심코 검색을 하던 중 어떤 이의 블로그에서 충격적인 글을 보았다. 3년이 지났는데도 숙주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헉! 나의 주치의께서는 1년 정도를 얘기했으니 설마 그렇게 오래도록 숙주병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거야. 없을 거야. 없을 거야. 주문이 필요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