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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1일 일면식이 없는 누군가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고, 그로부터 46일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서야 이것이 림프종과 함께하는 기나긴 여행임을 깨닫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림프종과 함께하는 여행.


 13년 11월, 나는 림프종 4기를 진단받았다. 진단을 받은 그날보다 훨씬 이전부터 림프종과 함게 동고동락을 했으리라.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지내오면서 림프종이라는 이 아이가 4기까지 자라 버렸을 테지. 그러니 림프종과 함께 여행을 시작한 것은 3년이 아니라 4년 혹은 5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게 치료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초기에 발견했더라면,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도 안 받았을지도 모르고, 다시 재발해서 동종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일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는 그동안 열심히 치료를 받아왔고,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우여곡절 끝에 잘 받아 내었다. 물론 회복을 잘 해야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어려웠던 치료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있을 회복기간들은 정말 우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처음 림프종을 만나고, 치료를 시작하고, 치료를 반복하면서 울고 울었던 그 과정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 힘들었던 과정들 속에서도 나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이것을 최고급 과외라 표현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노라 말했었고, 림프종을 치료하는 과정 속에서 몰랐던 내 속마음을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컸던 것은 내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놀랍도록 많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과정들을 잘 이겨내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르렀다. 

 이것은 림프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내가 림프종을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림프종과 함께 담담히 걸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림프종과의 동행. 림프종을 동반하는 기나긴 여행이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누구나 갈 수 없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은 아주 특별한 여행길에 나는 올라있다.

 모든 여행에는 그 종착역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림프종 여행은 그 끝이 어디일런지 그 종착역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하고 이 여행을 더욱 매력있게 한다. 나는 지금 이곳이 종착역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곳이 과연 종착역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와의 동행이 앞으로도 길게 펼쳐져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최소 5년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펼쳐질 5년 동안에도 변함없이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것이고, 그와 함께 동행하며 즐거운 림프종 여행길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이 림프종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할 때 나는 웃으며 그를 떠나보내리라.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 림프종과의 여행이 즐겁다는 것, 특별하다는 것, 매력적이라는 것. 누군가는 나의 일기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의 일기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진심이 없는 까닭에 나는 림프종과의 여행을 포기할 것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일기가 거짓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림프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 없느냐?' 이다. 그리고 나는 몇 년이나 흘러버린 이제서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거짓을 진심인냥 가장하여 나 자신을 속이려 하는 것이다. 고 나는 오늘도 나를 설득한다.

 아직 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림프종과 동행하며 즐거운 여행을 지속해야 한다.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이 끝났을 때 그것이 이 여행의 종착역이라고 여겼던 것은 나의 커다란 착오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마치고 무균실을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여행길이 어떠한 모습일지 알 수 없으나, 나는 변함없이 그와의 여행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고, 이 여행의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리라. 



무균실 탈출, 그리고 거대 세포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놀랍게도, 이식을 받은 후 정확히 한 달 만에 무균실에서 탈출했고, 곧바로 퇴원을 감행했다. 이것이 놀라운 것은 정확히 한 달이라는 시간만에 회복이 되었다는 점인데, 이것이 통계적으로 무척이나 빠른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행운아 인가 라고 생각을 했지만, 퇴원한지 10여일 만에 다시 입원을 당했다. 거대 세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았던 격리식을 먹으며 온갖 투덜을 다 부리고 있는 중이다. 어떤 모습으로 이 여행길이 펼쳐질까 궁금해하던 차에... 바이러스 감염이라니! 나 지금 너무 설레여 하는 건가? 20대에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했었는데, 그 때의 그 바이러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쨌거나 같은 부류의 바이러스라고 하니 그럴 가능성도 있는걸 테지. 이따구 바이러스 때문에 몇 주간을 병원에서 입원해야 한다니. 에구구 내 팔자야. 게다가 나는 아직까지 입맛이 돌아오질 않았다. 무언가를 먹고 나면 넘어올듯한 구토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서 병원의 격리식은 정말 최악이다. 최대한 빨리 퇴원할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



림프종 여행의 종착역


 사실 나는 무척이나 게으르다. 특히 요즈음의 나는 더더욱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일기부터는 일기가 아닌 여행기라고 바꿔 부르려고 결심했다. 투병일기는 왠지 너무 슬프고 무겁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 "림프종과 함께 하는 여행기" 라는 어감에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한가득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 이 여행의 끝이 아님을 잘알고 있기 때문에 이 여행기의 마침표를 아직은 찍지 않을 것이다. 이 여행의 종착역이라고 표현한, 마침표가 되어질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될때까지 이 카테고리에 글을 조금씩 더 채워나갈 생각이다. 앞으로의 그 이야기들은 지금까지의 힘들었던 과정들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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