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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났음을 확인한 후, 주변에 그 사실을 열심히 알리며 치료를 시작한지 벌써 2개월이 흘렀다. (나의 주치의는 그 녀석이 재발했음을 통보할 때 "다시 스믈스믈 기어 올라온다"라며 의인화하여 표현했다.) 직장과 집을 비롯 내 삶에서의 다양한 역할들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한 이후의 내 삶은 폭풍 처럼 거칠고 빠르기만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 감정은 또 이만큼 자라왔고 또 이만큼 성숙해졌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또 다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받았다. 못나게만 살아왔던 내가 이토록 과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받고 있는 이 많은 사랑들을 다시 되돌려 드릴 그날을 손 꼽아 기다린다. 유급 휴직이 마치 당연하단 듯이 선뜻 결정해준 사장님과 이사진 분들, 직장의 일들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소장님과 연구소 식구들, 집안에서의 역할이 최소화 되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장모님을 비롯한 처가 식구들, 가장 크게 맘고생했을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 무엇보다 내 옆에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내와 아이들...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지금의 이 사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다. 림프종이라는 이 녀석을 완전히 이겨내기까지 이 사랑들을 밑거름 삼아서 거침없이 싸우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림프종과의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단순한 치료 계획.

 자 이번의 치료 계획은 이렇다. 먼저, 항암 치료를 2회 받는다. 그 결과가 좋은 경우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다. 그리고 림프종과 결별한다. 이것이 치료 계획이다. 물론 항암 치료의 결과가 좋아야 하고, 이식을 잘 받아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계획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물론 이식을 받기위한 공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어려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두번째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유전자가 일치하다는 공여자도 찾아낸 상태다. 그렇게 치료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불안하고 어두워만 보였던 치료 과정들이 지금은 잘 포장된 고속도로처럼 순탄해 보인다. 도대체 이 모든 것들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치료를 받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치료를 받는 하루하루가 감사함의 연속이다. 두번째 항암 치료가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조만간 PET을 통해서 치료 결과를 확인할테다. 그리고 그 결과가 굉장히 좋게 나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대로만 계속 치료가 잘 진행되길 바란다. 

 사실 앞으로 있을 미지의 치료과정이 나는 두렵다. 그 두려움은 어느 만큼의 통증들이 동반될지에 대한 육체적인 두려움이 결코 아니다. 앞으로 겪어야 할, 내가 격지 못했던 미지의 것들이 두렵다. 알수 없는 외로움이 들 때마다 두렵고, 모든 것들을 잃을 지도 모른 다는 상실감과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놓칠 것 같아 두렵다. 나의 존재감 자체가 상실 될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두렵다. 이러한 감정적인 두려움들로 인해 우울해 해서는 안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우울한 상태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이미 갖고 있다. 그것은 림프종은 반드시 고칠 수 있는 병이다. 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을 붙잡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곧 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며, 날 사랑해 주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치료과정은 이토록 간단하지만, 그 간단한 치료과정 위에 올라 있는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이다.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

 1년 하고도 절반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 동안에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고, 회복을 했으며, 일상 생활을 했다. 그동안에 감사했고, 행복을 꿈꿨으며, 사랑을 나누며 지냈다. 처음에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면 모든 것이 완벽해 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완벽함 이였을까. 그것으로 부족하니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라 강요 한다. 이를 통해 조금은 부족한 나를 제대로 완벽하게 만들어 주겠다 한다. 그렇게 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은 한번 태어난다고 하지만, 난 벌써 두 번을 태어났음에도, 한번 더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 이후의 내 모습이 너무나 궁금하다.

 14년 6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함께 받았던 두 분이 있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무균실은 3인실이다.) 두 분 모두 나보다 20살 이상은 많은 아저씨 들이었는데 나이가 많은 탓인지는 모르지만 나보다 더욱 힘들게 이식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두 분을 모두 이번에 다시 만났다. 나는 1년 6개월 만에 재발, 한 아저씨는 1년 만에 재발, 또 다른 한 아저씨는 1년 2개월 만에 재발했다. 함께 이식을 받았던 3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재발해서 다시 병원에서 만나게 되다니. 이거 참 엄청난 인연인가 싶다. 

 우리 셋 중에 가장 먼저 재발한 아저씨는 3개월 전에 동종 이식을 받았고 지금은 회복하고 있는 단계다. 아직은 거동이 불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제 회복할 일만 남았으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다른 아저씨는 동종 이식을 포기하셨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 자가 이식도 간신히 이겨냈고, 지금 받고 있는 항암치료도 간신히 견뎌내는 정도인데 도무지 동종 이식을 받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 이제 60의 나이인데도 이겨낼 기력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소진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동종 이식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의 항암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가장 걱정했던 공여자도 나타난 상태다. 이번에 받은 항암 치료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PET 촬영을 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이식 승인을 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치료 과정이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 모든게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이식을 잘 받기 위해서 체력을 길러 두어야겠다.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지금의 계획이다. 한동안은 이것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그렇게 우리 셋은 모두 재발했고, 다시 뭉쳤다. 어깨를 으쓱할 정도로 어색하게 만난 우리는, 누구 하나랄 것 없이 모두 힘들게 투병중이다. 우리 셋만을 기준으로 하면 완벽한 재발률이다. 백퍼 재발이다. 어차피 재발을 하게 되고, 결국은 동종 이식을 받게 될 것을... 왜 그토록 힘들게 자가 이식을 받아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의료진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 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환자들 돈이나 갈취하는 나쁜 의료진 이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가 이식만으로 완치가 될 확률이 있다면 당연히 자가 이식을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자가 이식으로 완치가 되지 못한 우리가 조금은 운이 없었을 따름이다. 



끝나지 않을 싸움?

 림프종은 항암치료에 잘 반응한다. 한마디로 약이 잘 듣는다. 그래서 다른 암들에 비해서 비교적 치료가 수월한 편이다. 그러니 다른 암이 아닌 림프종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고 감사해야 하는걸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림프종은 재발이 굉장히 잘 된다는 것이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법도 없고, 관리법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림프종은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어떤 분은 이번이 5번째 재발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이후에 3개월 만에 재발했었다고 하니 정말로 놀랄 지경이다. 그는 "어차피 재발할 거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답니다." 라면서 사람 좋은 얼굴로 담담히 말하는 법을 익혔을 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동종 이식을 하고 나면 재발하지 않을 꺼에요" 라며 위로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림프종은 끝나지 않을 싸움의 대상으로 보였다. 그의 나이는 실제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적었고, 나는 걷지도 못할정도로 허약해 보이는 그에게 보약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결코 림프종과 자주 싸우고 싶지 않다. 이번이 마지막 싸움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알아갈 것이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것이다. 결코 끝없는 싸움을 바라지 않는다.


 영양재를 떨쳐낸 후 공용샤워실에서 씻고 나올때 아메리카노가 무척 그립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메리카노 끊기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이 싸움의 첫 걸음인 것 같이 느껴졌고, 그 순간이 즐거워 마냥 들떠서 총총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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