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 제임스류님은 오늘 피검사를 하셔야 하는데, 아직 안하셨네요?"

 국내에서 손꼽히는 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른바 책바퀴가 돌아가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에 몰두 해야만 한다. 환자들의 손발이 되어야 하고, 교수님의 손발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모든 흐름이 책바퀴 돌듯이 오차없이 돌아갈 수 있고, 그렇게 물 흐르듯이 잔잔하게 모든 일들이 연결도록 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임무인 것이다. 외래진료실은 나의 통제를 받아야만 정상적인 동작이 가능하므로 내가 앉아 있는 이자리는 일종의 운전석인 샘이다. 혈액종양과 병동에서 2년간 근무하고, 혈액종양과 외래로 배치되어서 이곳을 운전하기 시작한게 벌써 1년이 넘었다. 병원동에서는 3교대 근무를 해야 하므로 육체적으로 힘든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지금 보다는 일하기가 수월했다. 외래에서는 업무시간 동안은 일초도 빠짐없이 모든 신경을 환자들과 교수님에게 쏟아 부어야 한다. 이것이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어 버리는 이유다.


 "피검사요? 지난 금요일에 했었는데, 또 해야 하는지 몰랐네요.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친절하게 안내해 줬었잖아. 하긴 매번 그러니 이제는 기대하지도 않아. 이렇다 보니 진료 예약이 되어있는 환자들을 미리 체크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빠뜨려서는 안되는 중요한 업무다. 덕분에 당신은 진료시간이 30분이상 뒤로 밀리게 될꺼야. 뭐 자업자득이지.


 나는 열다섯이 되었을 때 꿈을 바꿨다. 그것은 티비에서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그 손길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였다. 열다섯살 중학생이던 시절에 티비에서 나오는 간호사들의 활약상을 보면서, 나는 헌신과 봉사의 삶이 나에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확신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에서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을 더 큰 가치로 여기며, 힘겹게 봉사활동을 하던, 한없이 따뜻해 보였던 그 손길들이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비춰졌었다. 물론 그때의 꿈을 이루어 간호사가 되었건만, 과연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물론 내가 이자리에 없었다면, 이토록 많은 환자분들은 따뜻한 도움을 받지 못할테지.


 "젊은 처자가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말할까." 

 "언지, 말 끝을 그렇게 올리면서 말하니까 굉장히 친근감이 느껴져요."

 "보조개가 너무 잘 어울려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에요."

이정도 표현은 약과일 정도로 사람들은 나의 얼굴을 볼때마다 칭찬 일색이였다. 심지어는 인형같은 얼굴, 조각같은 얼굴, 천사의 미소 등 차마 내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칭찬 뿐만 아니라, 유명 여배우들 몇몇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며 신기한 듯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 칭찬들 덕분에 나는 환자분들에게 더욱 환한 미소를 보이며 천절함의 미덕을 아니 친절함의 매력을 맘껏 발산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년전에 가뜩이나 부족한 휴가를 모두 투자해서 라색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로 안경으로 부터 해방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후부터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는 횟수가 더 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의도한바가 아니였다. 난 그저 수영을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어릴적 꿈꾸던 간호사가 되어 일을하고 있지만, 어릴적 꿈꾸던 그런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것은 아니다. 물론 나의 상냥한 외모와 친절한 말투들이 이곳을 찾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으로 만족을 하며 지내고는 있지만, 언제가는 내가 꿈꾸던 그런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루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흠... 선생님, 어딘가 달라지셨는데... 원래 안경을 안쓰셨던가요?"

 뭐, 이정도 멘트는 놀랄일도 아니다.

 "어머, 제임스류님 오셨네요. 우리 제임스류님은 피검사 결과가 아직 안나왔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접수는 지금 할께요. 그리고 혈압도 재주시구요."

 그가 외래 창구에 도착하자 마자 최대한 반가운 얼굴,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의 환한 미소에 그도 밝은 얼굴로 웃어보였다. 지금은 외래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병동에서 근무할때 그를 간호하면서 친숙한 얼굴이 되었던 터였다. 물론 외래에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의 이름을 말하며 이렇게까지 반갑게 맞이하지는 않는다. 모든 환자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한동안은 정기검사 이외에는 외래에 자주 오지 않던 그였는데 이번의 외래진료는 이전보다는 무거운 마음이 될터라 걱정스러운 마음이였다. 물론 그는 아직 교수님의 진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오늘 아침 진료예약 차트를 확인했는데, 그는 이번 CT 검사에서 병이 재발된 것으로 확인된 상태였다. 


 누구나 삶의 변화를 맞이할때 그 옥죄어오는 느낌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지금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테다. 그래서 나도 지금의 삶이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지금 내 삶의 방식이 무너진다면? 인지도 못하다가 어느 한 순간 보이지도 않는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과연 나는 그 변화를 견뎌낼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그것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잘 참고 이겨내고 있다. 그리고 내 앞에서 이렇게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들이 존경스럽다. 물론, 나는 다른 간호사들 보다 훨씬 이쁜 얼굴로 훨씬 다정하게 활짝 웃으며 말하기 때문일 테지만...  


 "밖에 잠시 앉아 계시면 안내해 드릴께요." 

 교수님과의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그를 바라보며,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했다. 나는 그가 받아들인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 그 결과를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걸까,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차츰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는걸까. 그는 속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혈액종양과는 다른과와 다르게 재발되는 환자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재발되었음을 통보 받는 환자들을 유난히 많이 접하게 된다. 처음으로 진단을 받은 후 병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환자들 보다, 재발이 됐음을 받아들이는 환자들의 뒷모습이 더 무거워 보이는 것은 그 절망감이 더 큰 이유일까. 삶의 모퉁이를 돌았더니 느닷없이 나타난 커다란 산을 보고 커다란 절망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그 산을 넘어왔을지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또 한번 삶의 큰 모퉁이를 돌았건만, 이번에는 더욱 커다란 산이 나타났을 테니 아무리 튼튼한 심신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정신건강이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이것을 이겨내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정신없이 다음 예약을 잡고 교수님 처방에 맞춰서 입원 예약 PET 예약 등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 또 다음 환자들을 체크해야 했다.


 "PET을 찍으셔야 해서 비어 있는 일정을 확인해 보니...  "

 다음 일정을 체크하기 위해 그와의 대화를 시도하던 중 문득 그를 올라다 본 나는 말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빨갛게 충혈된 체 초첨을 잃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훔쳐냈을 것 같은 그 눈물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함에도, 나는 순간적으로 그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버렸다. 하루에도 몇십 명의 환자들이 절망에 빠져 슬퍼하는 모습을 봤었다. 그러니 이제는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 질만도 한데, 아직도 멀었는가 보다.순간 적으로 그의 동공에 내가 비쳐지는 것이 보였다. 그 눈이 시리게 웃는듯 보였지만, 그건 착각이였을지 모르겠다. 찢어진 그의 눈에서 언뜻 그의 눈물이 비쳐졌다. 그의 눈물에 비춰진 내가 떨고 있었다. 

 "제일 빠른 시간이 19일 오전 11시네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너무 우스꽝 스러운게 아닐까? 지금 이 상황에서 나누고 있는 이러한 대화는... 나는 순간적으로 그에게 너무 이상한거 아니야? 라고 말할뻔 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정확하게 다음 일정을 안내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친절한 웃음을 유지했다. 많이 사람들이 예쁘다고 칭찬해 주던 그 웃음을 유지했다. 철저한 직업의식이 발동한 것일까. 아니면 나는 이뻐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동한 것이였을까. 어쩌면 그는 이러한 내가 전혀 이뻐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역겹다 느꼈을지도 모를일이다.

 머 아무려면 어때. 난 아직 준비가 부족한가 보다. 흥.

 아니. 아니지. 나는 이럴려고 간호사가 된게 아니잖아. 그래 난 아직 간호사로써의 자질이 부족한거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상처입은 사람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저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주는 꼴이라니. 내 이쁜 얼굴을 보면서 위안 삼으라는 꼴이라니. 아아. 난 순간적으로 내장이 뒤집히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년을 참아오던 구역질이 다시 솟아났다. 구역질 나는 듯한 미소로 애써 설명하는 내 얼굴이 안쓰러웠던 걸까. 그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들고 테이블위에다 짧은 박자로 손가락 드럼을 치면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는 그는 아무 소리 없이 뒤돌아서 걸었다. 


끝. 


 먼저, 국립암센터 혈액종양과에는 위에서 묘사한 분과 같은 간호사 분은 없습니다. 이건 그냥 픽션이니까요.


 사실, 이렇게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환자들에게는 굉장히 큰 고통입니다. 막연하죠. 앞으로 일어나야 할 일들이, 앞으로 해처나가야 할 일들이, 앞으로 이겨내야할 힘듦이,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들까지 보태져서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됩니다. 만약 주변에 저와같이 투병중인 분들이 있다면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세요. 열마디 말보다 한번의 포옹이 더욱 값지다고 느끼는 요즘 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