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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11월... 평생토록 들어본적 조차 없었던 림프종과의 첫 만남이 있었고,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림프종이란 거대한 산에 압도 당했었고, 내 생명을 쥔채 흔들어 대고 있는 의사님 앞에서 생쥐마냥 꼬리를 감추기만 했었다.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항암치료의 시작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실감하며 바들바들 떨었었다. 림프종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인 투병생활을 시작했음에도, 정말 생생한 꿈을 꾸었다며 커다란 기지개를 키면서 꿈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바랬었다. 어디 그 뿐만이랴,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둔채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두려워 몸서리 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내 가족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불을 깊게 뒤집어 쓴채 홀로 눈물을 닦아야 했었다. 그때 느꼈던 깊고 깊었던 외로움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이였고, 그토록 깊은 외로움은 힘들었던 항암치료 과정을 견디면서도 느닷없이 불현듯 찾아오곤 했었다.


그렇게 나는 8개월간의 투병생활을 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전, 조혈모세포이식실의 무균실을 나오는 순간에 내 날개는 봄날의 푸른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개짓했다. 혹독했던 항암치료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조혈모세포이식, 그 길고 길었던 투병생활이 혹한기와 같았다면, 지금 이 순간은 내 인생에 가장 따뜻한 봄날이다. 난 또 한번의 삶을 부여받았고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림프종은 나에게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 숨쉬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이토록 즐겁고 감사한 것임을 알게해 주었다. 림프종이 없었다면 이 소중한 것들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그러므로, 림프종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어둡기만한 길고 긴 터널을 지난 것과 같은, 고통스럽던 항암치료 과정들과 조혈모세포이식을 견뎌냈지만, 그것들이 나에게는 림프종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최고급 과외를 받는 과정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난 그동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나게 비싼 과외를 받은 것이고, 그로인해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많은 것들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코 비싸지 않은 과외일 뿐더러, 이 과외가 나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난 행운아인 것이다.


*

일단의 치료과정은 이제 모두 끝이 났다. 한동안 면역증강제도 맞아야하고, 한달 정도는 외래에 매주마다 와야 하지만, 그건 단순히 몸상태를 체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것은 그야말로 축하할 일이다. 이제 2~3달 정도의 회복기간을 거쳐서 일상생활로 복귀할 예정이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벌써부터 설레인다. 


그런데, 나 잘 할 수 있을까? 


가장 두려운 것은 30 이라는 숫자다. 이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0 만큼의 재발확률을 안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 물론 이것은 숫자일 뿐이고, 이것에 연연할 필요는 전혀 없겠지만, 그래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그만큼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림프종이 재발해서 또 다시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리고 이번에 받았던 많은 도움을 또 다시 받게 될지도 알수 없다. 과연 회사에서 또 다시 장기 병가를 내줄까... 몸이 불편하신 장모님이 그때도 지금처럼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불확실한 상황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더욱더 불안하고 두렵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고, 과로가 없어야 할테고, 항상 즐거운 마음가짐이여야 할테고, 철저한 식단 관리는 물론이고 면역력 증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알아봐야 할테다. 먹는 것도 있을테고, 등산과 같은 것들도 있을테지. 이 모든 것들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이 앞으로 나에게 남겨진 숙제다. 적어도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5년 동안은. 


투병을 하면서 알게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것중에 하나가 지금의 생활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심각한 스트레스와 과로를 유발시키는 IT 업계에 종사 하는 것, 도심속에서 시멘트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나를 망치고 있다고 입을모아 얘기한다. 나 역시 그것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만... IT를 포기할수도, 도심생활을 포기할수도 없다. 아니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없다. 또한 그럴 수 있는 추진력 또한 없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난 기존에 살아온 내 삶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그 틀안에서 림프종이 재발하지 않기를 마음 졸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만약 림프종이 재발하게 된다면... 난 결단코 지금의 모든 생활들을 정리할 것이다. 무슨일이 있어도 말이다. 내가 살아야 내 가족이 산다. 그로인해 더 힘들게 살게 될지라도, 살아 있어야만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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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37일간의 병실 생활을 마치고 내일 퇴원한다. 그 기간동안 고용량 항암제를 맞았고,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고, 조혈모들은 잘 생착되었고, 내 몸은 허약해 졌다가 차츰차츰 기력을 회복해 갔다. 그 과정동안 정확히 20일동안 한끼의 식사도 못했는데, 덕분에 10키로에 가까운 체중이 빠져나갔다. 입맛도 어느정도 회복되었으니 빠져나간 체중을 다시 되돌리는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지. 내일의 퇴원이 치료과정의 끝이자, 림프종으로 입원하는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기 위해 고생했다. 내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까지 않고 싶다. 겪어보니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님을 알았다. 이토록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낸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날 위해 열심히 기도 하셨다고 엄마를 통해서 들었다. 물론 아버지 뿐만 아니라 엄마도 같이 기도를 하셨을테지. 두분의 그 사랑담긴 기도가 있었기에 내가 더욱 잘 견뎌낸 것이리라. 덕분에 아무런 사고없이 이식을 잘 받고, 생착도 잘 된 것이리라. 부모님 뿐만 아니라 날 위해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께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일단은 건강한 모습을 그분들께 보여드리는 것이 첫번째겠지. 그리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겠다.  


그동안의 투병생활을 돌이켜보면, 그 과정이 죽을만큼 힘들었던가? 못견딜 정도로 고통스러웠던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투병생활동안 난 울기보다 더 많이 웃었고, 속상해 하기보다 더 많이 즐거웠으며, 미움보다 사랑이 더 가득했다. 투병생활 동안 그렇게 커다란 힘듦이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필코 나의 가족임에 틀림이 없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내 아이들. 내 가족이 있기에 난 더 많이 웃었고, 즐거웠고, 사랑으로 충만했다. 내 옆에서 조용히 묵묵하게 함께 해주면서 큰 힘이 되어준 내 아내에게 특별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말은 안했지만 함께 해주었던 그 존재감 만으로도 듬직했으며, 덕분에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고, 덕분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음을 전하고 싶다.


*

여섯번의 항암치료를 끝마쳤고, 자가조혈모세포 이식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이제는 다소 약해진 체력을 회복할 일만 남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투병일기는 그만 작성해야 할테다. 이제 건강해 질테니까. 다시 투병일기를 쓸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투병기간동안 다방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시 태어난 듯한 마음가짐으로 내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분들께 보답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받았던 이 사랑들을 돌려 드릴 그날이 오기까지 말이다.  


2014.07.10. 퇴원 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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