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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바랬던 6차 항암치료를 끝내고 의사님과 마주했다. 그리고 난 감사함으로 충만한 가슴을 안고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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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항암치료가 끝나고 의사님과 마주했다. 그는 여전히 권의적이였으며 나는 여전히 새침했다. 지난 만남에서, 그는 6차 항암치료를 끝내고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진행해도 괜찮겠다고 했었다. 예정했던 7차와 8차 항암치료는 안해도 될 것 같다고 했었다. 그것은 나에게 커다란 희망이였고, 6차 항암치료를 더욱 잘 견디게 해준 원동력이였다. 그랬던 그가 말을 바꿨다.  


7차 항암주사를 하고나서 골수검사를 하자고 하더라. 골수의 상태가 깨끗한 것으로 판명되야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할 수 있는 승낙를 받을 수 있다나... 그리고 나는 병기가 높았기 때문에 좀더 확실한 치료를 위해 한번 더 항암치료를 하는것이 바람직할 것 같단다. 어쨌거나 갑자기 말을 바꾼 그가 너무나 미웠다. 그러나 난 의사님의 권위에 도전해본적이 없는 시크한 환자으므로, 7차 항암치료를 받고나서 골수 검사를 하자는 그의 말을 듣고서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6차가 마지막 항암치료가 되리라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바람에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난 시크한 환자이므로 의사님앞에서 전혀 내색을 안했다.


의사님께 다음에 보자고 인사를 건낸 후 착찹한 심정으로 마눌님께 전화를 했다. 7차 항암치료를 받기로 했음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눌님의 목소리를 듣다보니, 의사님과의 대화중에 억눌렀었던 먼가 억울하기도 하고 찹찹하기도 했던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올라와서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7차 항암치료를 왜 하자고 한거지? 그걸 묻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런데 왜 7차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거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그걸 마눌님이 전화통화로 나에게 물었던건가? 어쨌거나 난 마눌님과 통화하던중에 갑자기 의사님의 권위에 도전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7차 항암치료는 개나줘버리고 당장 골수검사부터 해봅시다! 라고 당당히 말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난 곧바로 다시 의사님과 마주했다. 그러나 난 결심과 다르게 당차지 않았고, 권위적인 의사님 앞에서 한없이 작기만한 환자일 뿐이였다. 


"저기요 선생님... 치... 칠차 항암치료는 안해도 되지 않나요?"


"네 그럽시다. 바로 골수검사부터 합시다."


어? 이거 머지 완전 쿨하잖아?... "네? 아 네 그래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그럼 ....  조혈모세포 이식이 어쩌구 저쩌구....  그러니 이러쿵 저러쿵 해서 3주가 걸리고 그 다음에 4주가 더 걸리고 어쩌구 저쩌구 하니 결론은 이렇게 거시기 합시다."


의사님의 긴 설명이 이여졌고, 난 그 말들을 열심히 귀담아 들었다. 그러나 난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속으로는 열심히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여느때와 마찬가지의 시크한 환자였다. 그렇게 난 소심하게 의사님과 몇가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6차 항암치료를 받은 후의 몸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씨티를 찍고 골수검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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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에서도 골수에서도 말 그대로 깨끗하다 했다. 온몸 여기저기에 퍼져있던 종양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했다. 골수는 온전한 상태로 돌아갔다 했다. 이렇게 설명해 주는 의사님의 옆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샤방샤방. 이게 다 내 덕분인거 알고 있지? 라고 금방이라도 물어볼듯한 기세였다. 아마 정말로 그렇게 물어봤다면, 당근이죠 선생니임! 이라며 온갖 아양도 떨었을지 모른다.


의사님이 말했다. "환자님과 같은 고위험군 에서는 재발할 확률이 70%가 넘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데이터를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혈모세포 이식을 권장하는 것이고, 조혈모세포를 이식한 이후에는 재발할 확률을 약 30% 정도로 낮출 수 있습니다."  결론은 닥치고 내말대로 조혈모세포 이식 받아라잉~ 이거였다.


30이라는 저 숫자가 못내 가슴에 걸리지만, 그래도 완치를 위해 달려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고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결심했다. 당연히 경험해본적이 없는 또 하나의 치료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길었던 치료과정이 끝나가는 것이 느껴졌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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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주는 주말 샌드위치를 포함한 6일 연휴였다. 그 연휴가 끝나고 입원해서 다음과정을 진행하자는 의사님의 말에 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1주일이라도 더 빨리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의사님과 상담을 마친 바로 당일에 입원을 했고, 바로 다음날인 29일 아침에 히크만 카테터를 받아들였다.


분명 케모포트를 삽입할때도 굉장히 끔찍하고 역겨웠었다. 아픔보다는 그 끔찍했던 기억이 선명했었는데, 카테터는 키모포트때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훨씬 더 끔찍한 느낌이였다. 몸이 바르르 떨릴정도로 몹시 추웠던 수술실과, 내 얼굴을 모두 뒤덮었던 뻣뻣한 느낌의 녹색 천, 긴장해서 떨리는 것인지 추워서 떨리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손떨림, 손떨림을 억누르기 위해 수실실 침대를 꽉 움켜 쥐었던 내 양손, 마취를 하지 않은 등뒤로 흘러내렸던 따뜻한 한줄기 핏물, 숨을 참아야 한다고 나지막히 말하던 그 목소리... 


돌이켜보니 이러한 모든 장면들이 케모포트를 삽입할때와 거의 흡사했다. 그런데도 케모포트때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은 케모포트를 삽입할때의 그 느낌을 벌써 잊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번에 카테터를 삽입할때 느꼈던 그 끔찍한 느낌도 점점 잊혀질지도 모를일이다. 하긴 그렇게 안좋은 기억을 오래 간직할 이유는 없을테지. 결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만난 히크만 카테터에게 두발이라는 다정한 별명까지 지어주었다. 허허 이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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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이를 삽입한 그날 저녁부터 항암제를 투여받았다. 그런데 두발이를 사용안하고 포트에다가 바늘을 꼽더라. 힝. 포트에 바늘 꼽을때마다 얼마나 아픈데... 쩝. 의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이 항암제는 조혈모세포가 골수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더라. 그렇게 튀어나온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거라니.... 와 엄청 놀랍고 신기한 기술처럼 들렸다. 뭐 의사가 아니고서야 이런 설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신기해 하지 않을까. 항암제를 투여받고 2주가 지나면 조혈모세포를 채취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는 그냥 병원 밥 잘 먹으면서 푸욱 쉬면 되는거다. 어쨌거나 난 항암주사를 또 맞았고, 용도는 다르지만 항암제는 항암제인만큼 난 또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구토증상과 울렁거림은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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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조혈모세포를 채취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에 행복했던 어린이날이 지났갔고, 슬펐던 어버이날이 지났으며, 내 투병 생활에 큰 획이 그어졌다. 항암치료가 다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큼지막한 쉼표 하나를 찍은 느낌이다. 


그리고... , 투병 생활의 마침표를 찍을 그날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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