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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게 바로 항암치료겠지. 물론 적응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지만 말이다. 다섯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컨디션 관리에 실패한 덕분에 지난 몇번의 항암치료보다 유독 힘든 회복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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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를 준비하고 있는 그대여, 감기를 조심하라.


지난 월요일(3월 10일)에 5차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기 바로 직전에는 이것저것 더 많은 것들이 하고 싶어진다. 아마도 항암치료를 받고난 이후에는 또 한동안 꿈쩍도 못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과 북악스카이웨이에도 다녀오고, 점심에는 이태리 식당에서 외식도하고, 저녁에도 와이프와 큰아이가 너무나 좋아라 하는 우삼겹을 먹으러 본가에도 다녀왔다. 그러는 사이에 난 가벼운 감기에 걸렸었나 보다.


아주 약간의 콧물이 나오는 정도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였다.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의사님과 상담하면서 감기에 대해서도 얘기 했다. 콧물이 조금 나오는 정도의 가벼운 감기증상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피검사 결과에서 염증수치가 없기 때문에 그정도 감기는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고, 그제서야 난 안심하고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2시간정도 지나서 부터인가... 감기증상이 갑자기 너무 심해져서 목소리 마저 제대로 안나올 지경이 되어버렸다. 콧물이 엄청나게 나오고 머리도 너무 아팠다. 


분명 지난 몇번의 항암치료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듦이였기에 난 간호사를 붙들고 이 힘듦에 대해 하소연 했으나... 열은 안나기 때문에 항암치료는 끝까지 진행하겠다는 답변을 받았고... 열이 나게 되면 응급실로 옮기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항암주사가 다 들어갈때까지 열이 나진 않았다. 일단 항암치료를 끝마치긴 했으나 몸의 피로가 극심한 탓에 꿈쩍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감기가 걸린채로 항암치료를 받는건 정말 미친 짓이구나 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항암치료를 받고 난 이후의 몸 상태는 과연 어떤걸까... 


평소의 나는 감기에 걸렸을때, 약을 먹지 않아도 오래 지나지 않아서 감기가 떨어지곤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적도 많았지만... 대채로 감기를 그리 오래 달고 살진 않았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받고 6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기가 떨어지려는 기미가 전혀 없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몇가지 약 말고는 이렇다할 감기약을 먹고 있는건 아니지만, 감기가 걱정되는 엄마의 따뜻한 수제 대추차와, 뜨끈한 수제 도라지차를 아침 저녁으로 마셨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 왔는데도 감기는 여전하다. 오히려 콧물 젖은 티슈들만 더욱 늘어가고 있다. 그런걸 보면 항암치료가 사람의 몸을 상당히 힘들게 하는건 분명한가 보다. 이토록 푸욱 쉬고 있는데도 감기가 떨어질 기미가 전혀 없는걸 보면 말이다.


이번 항암치료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서... 다음번 항암치료 전에는 꼭 감기를 조심해야 겠다. 아직 3번의 항암치료가 더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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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항암치료의 부작용중 가장 큰 어려움은 구토증상과 울렁거림이다. 


이번에는 유독 더 심했다. 처음에는 감기 증상과 겹쳐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차수가 넘어 갈 수록 구토증상도 더 심해지고 울렁거림도 더 심해지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심해 지기도 하거니와 기간도 더욱 길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3-4일 정도면 괜찮아 졌던 증상이 이제는 일주일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부작용들이 엄청 많고 신경쓰이는 것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다른 증상들은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머리가 조금 아픈거 정도는 참을만 하고 또 금방 없어지니까.. 빠져버린 머리야 이미 적응이 다 되었고, 손가락 끝이 저리는 것도 이미 다 적응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 울렁거림은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아 그런데... 임신했을때의 그 헛구역질과 울렁거림도 그렇게 힘들다던데... 아이 셋을 낳아준 와이프의 그 힘들었음을 뒤늦게 경험해 보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첫째 임신했을때 먹고 싶다던 딸기를 못사준게 왜 갑자기 생각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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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수염이 자랐다.


머리카락을 포함한 내 몸의 털의 80%는 빠진것 같다. 일단은, 탈모와 관련해서는 포기한지 한참 됐다만, 흰색 수염이 자랐다는건... 음 뭐랄까 그냥 재밌다. 원래가 수염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하루만 면도를 안해도 덥수룩해서 별로 보기 좋지는 않았었는데, 항암치료를 시작한 후로는 2주 정도는 지나야 예전의 하루 분량의 길이로 수염이 자라는 것 같다. 물론 양도 훨씬 적다. 그런데 그 와중에 흰색 수염이 나와 있는 모습이 참 재밌다. 머랄까 신선이 된 느낌이랄까? 이건 좀 재밌는 현상이니 항암치료가 끝나도 이렇게 흰색 수염이 나와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후후


기분 전환 겸 셀카 놀이

흰색 수염은 보이지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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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이 오면...


지난 가을이 지날쯔음 림프종 확진을 받았고,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의 투병생활도 시작되었다. 그렇게 겨울과 함께 항암 치료를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찾아왔다. 반갑게도.



뒷산에 꽃이 피었네.


부침으로 먹어버린 보들보들한 어린 쑥


엄마의 정성이 담긴, 입안가득 봄향기가 퍼지는 냉이된장국을 먹었고, 달래가 들어간 양념간장으로 슥슥 비벼먹는 냉이밥을 먹었다. 그리고 간식으로는 부들부들한 어린 쑥으로 만든 쑥부침개를 먹었다. 그런 향긋한 봄을 맞이했지만 난 여전히 울렁거림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이제 꽃피는 봄이 왔으니, 나의 투병일기에도 하나의 마침표를 찍고 싶은 심정이다. 힘들기만 했던 그 겨울이 이토록 빠르게 지나갔으니 봄 또한 빠르게 지나갈테고, 이제 곧 여름이 올꺼라 믿는다. 그리고 나의 투병생활의 끝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의 투병생활에 화이팅을 외쳐본다.


화이팅!!!


2014.03.06 림프종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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