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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로부터 10일이 지났다. 그리고 난 또다시 투병일기를 쓰고 있다.

 

한동안 투병일기를 쓰는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난 여전히 림프종을 이겨내리라는 투철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며, 그것과 완벽히 동일한 의미를 부여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림프종을 이겨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대단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 몸을 의사님께 온전히 맞기고 있을뿐이다. 내 몸에서 피어나고 있는 아름다운 그 무엇 때문에 설레여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오는 이상한 반응들로 인해 두려워하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의사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서야 천상을 날아 오르듯 붕 떠오르기도 하고, 하염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나를 절대적으로 위하고 아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가장 필요한 그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임을 느끼고 슬퍼한다.

 

그러므로 투병일기를 쓰는일이 나에게는 대단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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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인트로가 상당히 우울하고 슬프다. 하지만 현재 나의 감정상태를 잘 나타내는 것 같아 오히려 맘에드는 인트로가 되었다. 나는 지금 오랜만에 투병일기를 쓰기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떨어질대로 떨어져서 더이상 떨어질 곳 조차 없을것 같은 "이상하고 얄딱하고 꾸리꾸리한 기분"이 되어 있고, 그런 기분이 된 몇가지 이유를 먼저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투병일기는 상당히 긴 스토리의 일기가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지금 암과 싸우고 있는 중이고 암을 이겨내려고 노력중이다. ....... 정말? 그래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인데? ...... 얼만큼 노력하고 있는데? ...... 어? 어... 어? 아.... 아? ....... 정말 노력하고 있는거 맞아?

 

아 그렇구나. 아니였구나, 사실 나는 지금 암과 싸우고 있는게 아니였어. 난 그저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뿐이였던거야. 내가 싸우고 있는 녀석은, 내가 힘겹게 싸워왔던 대상은 암이 아니였어. 그건 바로 함암치료 였던 거야. 그러니까, 항암치료에 사용되었던 화악약품들 이였던거야. 이상하다. 내가 싸워야할 대상이 이게 아닌거 같은데...... 어? 그럼 암이라고 통칭하고 있는 그 종양덩어리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거야? 어? 점점 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작아지거나 그러고 있는거겠지? 아아! 알수없어!. 답답해!. 조급해!. 미치겠어!.

 

그런데, 내 몸속에 있는 이 종양덩어리들은 왜 생긴걸까? 이것은 처음부터 의문이였고, 지금도 의문이고, 앞으로도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의문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항암치료가 다 끝나고 나면 내 몸속에 있는 종양덩어리들은 깨끗하게 없어질테지만, 지금 하고 있는 치료라는 것이 종양덩어리들을 없어주는 것이잖아? 그런데, 왜 생겨났을지 모를 종양덩어리들이 또다시 생기지 않도록하는 치료는 언제하는거지? 어? ...... 도대체 그런 치료가 있기는 한건가?

 

처음부터 의사님께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 이병이 왜 걸리는거에요? 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도 그러했고,  그리고 또한 마찬가지로, 이병이 치료가 되는거에요? 라는 질문에도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들은 것은 단지,  명확하지 않은 애매하고 모호한 뜻을 가진 단어들 그것도 명사가 아닌 부사나 동사의 조합들 뿐이였다. 어쩌면, 그럴수도, 저럴수도, 이런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  의사님들은 왜 이렇게 애매히고 모호한 뜻을 가진 단어들을 사용하므로써 환자들에게 알아서 해석하라는 숙제를 더해주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애매하고 모호하다. 내 몸속에 있는 종양들은 분명히 어떤 이유로 인해서 생겨났을 것이고, 앞으로도 동일한 이유로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생겨진 종양들을 제거하기 위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니까 종양들이 생겨나는 그 어떤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이고, 그 이유를 고치는 행위는 전혀 하고있지 않은체, 내 몸속에 이미 생겨난 종양들만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내 병이 치료가 된다고? 이건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난 의사가 했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완치가 된 이후에 1년동안 종양이 다시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는 그말.

 

생각해보면 더더욱 이상하다. 완치라니? 어떻게 완치라는 표현이 가능한거지? 치료 자체를 한적이 없는데? 이미 생겨난 종양을 없애기 위한 치료를 한건 맞는데, 종양을 다시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그러니까 궁극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는 한적이 없는데? 그런데 이미 생겨난 종양을 다 제거 한다고해서 완치가 된거라고? 그런후에 다시 종양이 안생기면 휴 다행이다 더이상 안생기네요. 라면서 기뻐해 주실려고? 그런데 또 다시 종양이 생기면, 어라? 또 생기셨네요. 그러니 이번에도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치료를 빡시게 하셔야 합니다. 라면서 허탈감을 주실려고? ....

 

결론은 이렇다. 난 현재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뿐이지, 내 병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불안하고 초조하며 그로인해 감정상태가 바닥 끝까지 떨어져 있다. 난 제법 영리하다고 생각했었고, 난 제법 내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생각했었고, 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상황들을 제법 잘 통제하고 제법 잘 다스린다고 생각했었고, 난 나를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낀다. 상당히. 그리고 나는 제법 예민하게 굴고 있으며, 몸무게도 제법 많이 줄었다.

 

그러므로 투병일기를 쓰는일이 나에게는 대단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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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함암주사를 맞은후 10일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 의사님을 만났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백혈구 수치는 많이 떨어져있었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백혈구 주사를 맞아야했다. 난 나의 이상증상들을 의사에게 설명했고 의사는 그것에 대해 과히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아팠던 목,

항암주사를 맞은후 4일째 되는날 목이 심하게 아팠고, 열은 없었지만 응급실에서 간단한 진료를 받았다. 가벼운 감기증상이라고 하기엔 아팠던 목의 부위가 너무 광범위했기에 걱정이 많았으나. 의사님은 과히 친절하게 그 아픔을 무시해 주셨다. 그 정도쯤이야 무시해도 괜찮은가 보다. 의사님의 친절함 덕분으로, 그저 가벼웠던 목아픔 정도로 기억속에서 지울수 있게 되었다. 만, 이 찝찝한 기분은 뭔지 모르겠다.

 

지속적인 위통,

마치 바늘로 콕콕 지르는 것도 같고, 가끔은 체했을때의 느낌과 흡사하고, 또 어떨때는 명치 부근에 돌덩이가 들어있는 듯도 한, 위통이 몇일째 지속되고 있다. 잘 먹어야 한다며 하루세끼 꼬박꼬박 머슴밥으로 챙겨주는 것도 모자라 오전 간식, 오후 간식 심지어 저녁 간식까지 챙겨주시는 엄마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지속되는 위통 때문에 입으로 무언가를 넣는 행위자체가 너무나 부담이 되는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님은 항암치료중에는 종종 그럴수 있으니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라는 친절한 답변만을 남겨주셨다. 고맙게도. 별수없이 난 위통이 멈춰주기를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손가락 끝 저림,

펜을 잡을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자판을 두드릴 일은 수 없이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바우처 신청을 위해 동사무소에 방문해서다. 병원을 가기위한 외출길에 동사무소도 들렸다. 덕분에 펜을 잡는일이 상당히 힘든일임을 알게 되었다. 벌써 한달째 손가락 끝이 저리고 있으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님은 항암치료로 인해서 신경이 다쳤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한번 손상된 신경은 되살아 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고... , 그래도 다행이다 자판을 두드리는건 그나마 참을만 하다. 펜을 잡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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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변의 통증과 눈물,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장운동에도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횟수가 더해질수록 배변의 어려움을 점차 어렵다 느끼게 되는 것을 보니 정말 그런듯 하다. 살면서 배변의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다른 누구보다도 이 부작용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수 있나보다.

 

여행을 한다거나, 워크샵을 간다거나, 친지집에 방문하거나 등과 같은 이유로 외박을 하게되었을때는 종종 배변을 거르곤 했다. 딱히 엄청나게 민감하기 때문에 집에서가 아니면 배변이 불가능 했다는 것은 기필코 아니다. 다만, 먼가 귀찮았을 경우라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여튼, 그렇다고 해도 하루 이틀 정도 배변을 미루더라도 그 이후에는 어렵지 않게 뒷처리를 잘 했었다. 그러니 지금도 하루 이틀 정도는 정말 아무렇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항암치료를 받은지 3일째 되는 날, 정말 딱 하루 배변을 미뤘다. 딱히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항암치료를 받은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구토감이 심했었고 그로인해 식사의 양도 상당히 적었다. 그러니 하루쯤 배변을 미룬다고 해서 문제될건 없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였다.

 

아랫배가 엄청나게 아팠다. 그러나 한시간이 넘도록 힘을 주었건만 성공하지 못했다. 눈물이 찔끔 거렸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고 그제서야 엄마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난 죽어가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서둘러 약국을 찾았으나 하필이면 설연휴였고, 약국을 찾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손에는 관장약이 들려있었고, 얼마후 난 배변의 기쁨으로 인해 나지막한 탄성을 질렀다. 그제서야 난 화장실에서 네발로 기어나올 수 있었다.

 

경험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본적이 없었으므로 어찌해야 할지 전혀 몰랐고, 머릿속도 텅비어 버린 듯했다. 단지 힘을 주어야만 한다고 그렇게 본능적으로 느꼈을 정도랄까. 정말 바보같이 그 오랜 시간을 죽어라 힘만 주었다니. 엄마가 없었다면 한시간이 아니라 열시간도 그러고 있었을 미련한 녀석이다. 나는

 

두 시간 동안 눈물과 함께했던 그 사투로 인해, 몇일 동안 좌욕을 열심히 해야만 했으며 관장약은 상비약이 되어버렸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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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보내다,
3차 항암치료를 27일에 받았고 그로부터 4일이 지나서 설날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아니 아시아에서 가장 큰 명절로 꼽히는 설날을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분명 지난 삼십칠년의 시간동안 겪었던 서른일곱번의 설날들과는 명확히 달랐다.

 

풍습이라는 것이 참으로 재밌다. 집안에 우환이 있을때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설날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차례를 지내는 것인데도 우리집은 차례조차 지내지 않았다. 풍습이란 것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집안마다 전통이 다르듯이 풍습이란 것도 명확한 정의에 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풍습이 그러니 우리도 그러한 풍습을 지켜야만 될 것 같았던 이상한 분위기랄까. 그런 풍습대로 우리는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슬프게도.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제사를 지낸후 남은 음식을 오래도록 보관하다가 먹다보니, 환자가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날수도 있었을 터이고, 마찬가지로 의료시설도 부족하고 약도 부족했던 시절에는 평소 왕래가 적었던 먼 친척들까지 만나게되면서 온갖 병들이 쉽게 퍼지기도 했을터이니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십분 이해가 된다. 그렇게 이 재밌는 풍습이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이어온 것일테지.

 

그런데 지금은 냉장고도 집집마다 있을뿐더러, 동네마다 병원과 약국이 즐비한 시절인데도 이런 풍습을 잘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러한 풍습을 잘 지켜야 겠다는 민족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호라 이때다 싶어서 중노동으로 관철되는 제사를 건너뛸수 있겠구나 라는 핑계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얼마나 간편한가. 아픈사람이 있으니 제사를 안지내겠다니 말이다. 그리고 누구나가 다 그것을 인정하고 당연시 하고 있으니 말이다. 후훗.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우리집이 차례를 지내지 않았던 것의 진짜 이유는, 바로 엄마의 뜻이 완강했기 때문이였다. 환자가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밑도 끝도 없는 엄마의 그 믿음때문이였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위에서 말한 것 처럼 환자가 있을때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풍습이 왜 생겨났는지는 엄마는 전혀 모를거다. 이건 정말 이백프로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신 것은 무언가 모를 불안감 때문이셨을거다. 왠지 제사를 지내면 더 많이 아파질 것 같은 불안감, 제사를 지내면 어딘가 모르게 나쁜 영향을 끼칠것 같은 불안감, 이러한 불안감이 차례를 지내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신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그 이면을 다시한번 살펴보면 제사를 지내지 않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아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강력하게  작용되었기 때문인거다. 그러니 난 닥치고 감사하고 있어야 하는거다. 물론!

 

덕분에, 매년 명절마다 볼 수 있었던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온가족이 둘러 않지도 못했으며, 조카들에게 새뱃돈도 쥐어주지 못했으며, 맛있는 음식들도 맛보지 못했다. 그래도 떡국은 먹었지만, 상당히 많이 부족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집안에 생겨난 우환이는 것이 다름아닌 나로 인한 것이므로, 전적으로 내 책임인 것이다. 그러니 나로써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더욱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걸테다. 그래도 덕분에 명절 증후군은 없었을테니 그걸로 만족하자. 특히 내 아내와 그리고 형수님한테는, 힘든 차례음식 장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을테니 그걸로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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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라 예상했던데로 정말 긴~ 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난 엊저녁에 일기를 쓰다말고 밀려오는 피로감에 그냥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오늘이 되어 일기를 마저 쓰려고 다시 컴터 앞에 앉았다. 그러니 오늘은 D+11이 되겠다.

 

할아버지 기일을 보내다,

설 명절을 지나고 또다시 5일이 지나고 나면 할아버지 기일이 돌아온다. 그러므로 우리집은 차례를 지낸지 5일만인 할아버지 기일에 또다시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이번 할아버지 기일에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는 차례를 지내지 않았던것과 동일하게 같은 이유다. 바로 집안에 우환이 있을때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풍습을 잘 지키겠다는 바로 그것이다.

 

할아버지 기일이 되기 하루전에 있었던 일이였다. 난 요양을 위해 김포 엄마집에 와서 있었고, 그날도 엄마와 아빠와 함께 셋이서 아침식사를 막 마쳤을 때였다. 느닷없이 아빠가 그래도 제삿날인데 음식을 조금이라도 해야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꺼내셨고, 이 문제로 어느정도는 민감해져 있었던 엄마는, 아빠의 그 말이 나오자마자 다 끝난 얘기를 또 꺼낸다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아주 사소한 얘기로 시작된 말다툼은 급기야 집안이 떠나갈 정도의 고함을 주고 받는 말다툼이 되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중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두분을 훈계하는 말들을 하게 되었다. 결국엔 감정히 격해진 아빠는 시골의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시겠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셨다.

 

먼가 어려움을 느꼈다. 내 감정을 제어 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껴져 가만히 나를 들여다 봤다. 확실한 것은 나의 감정상태가 바닥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고, 덕분에 평소 잘 흘리지도 않던 눈물이 자꾸만 흘러서 방에 들어가 몰래 십여분을 울어야만 했다. 이상하게 감정이 잘 제어되지 않는 요즘이다.

 

그렇지만, 내 감정을 잘 추스려야 했다. 그리고 나가버린 아빠에게도 전화를 여러번하고 집에 남겨진 엄마에게도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몇번의 대화 끝에 사건은 일댠락 지어졌다.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간단한 제사상은 차리는 것으로... 그러니까 어느정도는 아빠의 승리로 돌아간 샘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야만 했고 나에게 남겨진 상처도 결코 적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단추는 잘 못 채워진 걸까. 고민해 보았고 그 위치도 어느정도 짐작은 가지만 그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채울수 있는 방법을 전혀 알수가 없었다. 그저 답답할뿐. 

 

덕분에 난, 내 감정을 다시한번 들여다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내 감정상태가 떨어질대로 떨어져서 그야말로 바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의 가장 큰 숙제는 이 감정을 잘 다스려서, 다시 이전의 그 감정상태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헤쳐나갈 수많은 어려움들을 결코 원활하게 이겨낼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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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시는 장모님께 감사함을,

세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11일이 지났다. 항암치료를 받고 바로 김포 엄마집으로 왔으니 이곳에 온지도 벌써 11일이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잠시 집에 갔다오기도 했고,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떡국을 먹기도 했으니 왕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기간이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나는 지금 내 아내가 그립고, 내 아이들이 그리운 것이 틀림없다.

 

덕분에 장모님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온전히 집안일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가 셋이나 되니 혼자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나도 없는 지금의 집안일은 모두 장모님 차지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리고 또 묵묵히 도움을 주시고 계신다. 더욱이 지금은 아이들이 독감에 걸려서 어린이집에도 못가고 집에만 있는 상황이다. 집안일에 아이들 돌봄까지 온전히 담당하고 계시니 그 힘듦이 더욱 크실테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가.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며 감사하다. 지금의 이 감사한 마음을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돌려드리련다. 그러니 일단 건강부터 빨리 회복하자. 라는 또하나의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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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렇게 투병일기를 쓰게 된것은 내 병을 잘 알고, 내 상태를 잘 기억함으로써 내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병을 치료하다보니 이런저런 걱정들이 한없이 밀려오게 되고, 그러다보니 투병일기가 다소 우울해 지는것 같다. 치료 기간이 최소 6개월이고 그 기간이 얼만큼 더 길어질지 알수가 없으니, 그 기간동안에 또 내 심경이 어떠한 굴곡을 그릴지 지금의 나로써는 알수가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쓰게될 투병일기들도 어떤날은 기쁨에 가득차고 희망에 가득차서 날아갈 듯이 기쁜 맘으로 쓰는 날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날은 오늘처럼 웰컴투 헬을 외치는 듯 우울하기가 그지없는 날도 있을테다. 그치만 이런 것들도 모두 병을 이겨나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이 이 병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니까.

 

그나저나 영어는 정말 진도가 안나간다. 근 한달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영어공부도 림프종 정복도 차근차근 노력해 나가야겠다. 조급한 마음은 일단 접어두자고! 아자아자 화이팅! 오늘의 투병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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