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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고 하더니만,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 항암치료가 벌써 반환점을 돌았다. 8번의 항암치료 중에서 벌써 네번째의 항암치료를 받았으니 이제 남겨진 숫자는 "4". 그리고 반환점을 돌기 전에 PET CT를 찍어서 중간 점검도 받았다. 그리고 난 감사함에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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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화면에는 두장의 흑백 사진이 나란히 출력되고 있었다. 오른쪽의 흑백 사진은 내 몸속에 자리잡은 암의 존재를 확인케 해주었던 사진이고, 왼쪽의 흑백 사진은 이번에 새롭게 찍은 사진이였다. 의사님은 나에게 그 두장의 흑백 사진을 보여주며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 주었다. 그는 내가 이 병원에 처음 왔을때와 완벽하게 동일한 음색이였고, 차분한 어조 또한 그때와 완벽하게 동일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심정은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두장의 나란한 흑백 사진은 그야말로 확연히 대비가 되어서 그 사진들이 동일 인물의 사진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쪽 사진은 암덩어리들이 가득한 모습이였고, 다른 한쪽 사진은 암덩어리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내 몸속에 자리잡고 있던 암덩어리들의 8할 또는 9할 정도가 이미 사라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않은 나머지 암덩어리들을 완전히 사라지도록 더욱 노력하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여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난 시크하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짧은 외마디로 감사함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지난 투병일기에서 신나게 떠들었던 것처럼, 난 불안하고 불안하여 또 불안했었다. 내 몸속의 암덩어리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거니와,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한가득 불안한 마음으로 검사결과를 기다려 왔으므로, 암덩어리들이 이토록 많이 사라진 모습을 확인했을 때는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갈 듯한 심정이였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지옥문과 천국문을 수십번은 들락날락한 느낌이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다가 흐르는 눈물에 흠칫 놀랐다. 요즈음 눈물이 많구나. 나를 걱정해 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고 감사하지만, 지금은 이 감사함에 마음을 내려 놓을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들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다. 제대로 잘 치료가 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던 그때는 이토록 힘든 알찹을 내가 왜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하느냐며 투덜거리고, 다 때려 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한가득 일곤 했는데, 이만큼 치료가 된 것을 확인하고 난 지금에서는, 앞으로 남은 알찹들을 잘 이겨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 일고 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토록 간사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좋아할 것도 아니다. 내 몸속에 퍼져있는 암덩어리들이 알찹으로 잘 없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이미 너무 많은 암덩어리가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병기가 높았기 때문에 현재 있는 암덩어리들을 확실히 잘라내야 할 뿐만 아니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더라. 그래서 의사님도 암덩어리들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8차까지는 알찹을 완료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알찹이 끝난 뒤에는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래야 재발의 확률을 좀더 낮출 수 있다고 하니 달리 선택이 여지가 없지 않은가. 이런 얘기들을 의사님과 나누다 보니, 또 이런저런 걱정들이 밀려오고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이제는 현재의 치료방법으로 완치가 되라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니까 알찹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내 몸속에는 확실하게 암덩어리가 없을꺼라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다. 그건 바로 이것이 완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완치가 아니라 단순히 내 몸속에 암덩어리가 없어졌을 뿐이라는 것. 의학적 용어로는 관해라고 표현 하더라. 그리고 완치가 되려면, 재발이 안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건데, 이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림프종 자체가 재발 가능성이 높은 병인데다가, 병기가 높을 수록 재발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데... 나의 병기는 4기 이므로 재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혹시라도 재발이 된다면, 그 뒤에는 치료가 더욱 어려워 진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내성이라나?


하지만, 나를 도와주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럴일은 절대 없을꺼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 또한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다. 반드시 이 병을 이겨내어 완치가 되고 말리라. 불과 1년전만 해도 나의 사전에는 림프종이라는 단어가 없었으나, 지금의 내 사전에는 아주 나쁜 뜻의 림프종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러나 이후의 내 사전에는 아주 고마운 뜻의 림프종이라는 단어가 있길 바란다. 림프종으로 인해 내 삶이 더 단단해 지고, 내 사랑이 더 충만해 졌으며, 내 의지가 더 강인해 졌기에 림프종은 나에게는 희망을 품게해준 고마운 존재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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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의 알찹이 지나갔다. 동일한 알찹임에도 회차가 더해질 수록 점점 힘들다고 여겨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기에 지쳐가는 마음을 다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지금이다. 그리고 4차까지 잘 견뎌냈듯이 남아있는 네번의 알찹도 잘 견뎌내야지. 림프종을 처음 알게된 이후로 3개월 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고, 이제는 치료과정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어디 한둘 이겠느냐만은 그 힘들었던 일들은 이제 모두 잊어버려야 겠다. 그동안에 품었던 희망들을 가슴에 안고 한발 한발 더 나아가야지. 그러다보면 환하게 웃고 있을 내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내 옆에서 묵묵히 손을 잡아주고 있는 내 사랑하는 아내와, 지치고 힘들때마다 내 힘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내 아이들, 당신의 병환은 뒤로한 채 아낌없는 도움을 주시는 장모님, 먹는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엄마와 아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성당의 많은 교우님들과 나를 걱정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지금 받은 이 사랑을 살아 가면서 모두 돌려 드리리라. 지금 받은 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돌려 드리리라. 나는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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