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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투병일기.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으로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림프종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며, 나는 또다시 투병일기를 적으려 한다. 지난 11월 재발 사실을 확인하고 12월 부터 시작된 1차 항암치료, 그 힘듦을 이겨내고 어느 정도 회복 되었지만, 이제 곧 2번째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그 과정이 두렵고 두렵지만, 난 이 일기를 통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긍정의 마음을 한아름 이끌어 내고자 한다. 나 자신을 다독이고, 나를 돌아보며, 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한다. 그리고 종내에는 림프종을 이겨내려 한다. 이 일기는 내가 림프종을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야 한다. 나는 림프종으로 인해 이만큼 더 성장했고, 이만큼 더 사랑했으며, 이만큼 더 깨달았다. 그러므로 이 일기는 나의 성장기다.  



재발의 제발은 재발.

 내 밖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이것은 먼저 "나" 라고 불리는 녀석을 향한 손찌검으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 녀석의 게으름에 그 녀석의 안이함에 그 녀석의 해이함에 그 녀석의 나태함으로, 그렇게 철저하지 못 했던 지난 1년 동안의 그 녀석을 따끔하게 혼내 주는 것이 필요했다. 물론 그 녀석은 이런 저런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실감이 나지 않는 상황속에서 상.당.히. 혼란함에 빠져있다. 내 밖의 또 다른 나는 그저 덤덤히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다. 고고한 사람의 주인공 모리 분타로의 잘려나간 발가락과, 본적 없는 눈 덮인 K2 동벽의 겨울을 떠올린다. 나는 그렇게 고고할 수 있을까. 고고하지 못한 나는 제발 림프종과 다시 만나지 않길 바랬던가? 하지만 분명한건 림프종이 재발하기를 바라진 않았다. 그렇게 제발과 재발은 한 끗 차이로 나를 K2 동벽을 향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상실감.

 나는 상실감을 느껴 보았을까. 그 단어의 무게를 알고 있을까. 지난밤 꿈속에서 분명한 상실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분명한 상실감 이였을까. 분명한 것은 붉은 두 눈과 축축하게 젖은 나의 베개다. 그리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슬픈 얼굴의 내 사람들이였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이토록 쉽게 상실감을 느끼게 해주는구나. 그러므로 나는 약에 취해 혼미한 상태로 잠자리에 드는게 싫다. 나는 이미 하나의 우주에 하나의 우주를 더해 더 큰 우주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세개의 우주를 더 만들었음에도, 나는 내 우주를 팔아서라도 나머지 우주에 빛나는 별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을 따름이다. 결코 이 모든 것을 말아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느끼는 상실감일 지라도 나는 나를 어여삐 여기고 싶고, 나에게는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싶다. 아니다. 사실 나는 상실감 따위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치는 필요 없다. 빨리 떨처버리고 이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서 뒤로 넘기리라. 다시 굳건히 일어서기 까지.



누구의 잘못이 아닌.

 오늘의 괴물은 자이언트 사자. 그리고 코뿔소. 아이는 힘들어하는 아빠를 바라보다가 장난감 칼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손가락이 아빠의 중심정맥관을 향한 아이다. "내가 맨날 괴물 놀이하면서 아빠 가슴을 칼로 막 찔렀거든. 아빠는 그래서 아픈거잖아." 보석 처럼 빛나는 맑은 아이의 두 눈을 바라보던 아빠는 메이는 가슴을 붙잡고 더욱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그것은 결코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결코 그 칼에 찔려서 아픈 것이 아니란다." 진지한 얼굴의 아빠를 바라보던 아이는 다시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 정말? 그럼 이쪽 가슴도 칼로 찌를꺼야. 이얏! 받아랏!" 아이는 그렇게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잘못했던 어느 부분이 마치 이것의 모든 원인이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단언컨데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에 타박도 필요 없고 사과 따위는 더더욱 필요 없다. 단지 그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다. 



정확히 20일.

 만에 머리가 빠졌다. 이것은 지난번의 머리 빠짐과 같이 정확히 20일을 준수했다. 내 빵모자들이 어디 있더라



기타 이식된 기관 및 조직 상태, 

기타 및 상세불명의 미만성 대B-세포림프종.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르게 병명 앞에 무언가 긴 것들이 첨언 되었다. 기타와 상세불명이라는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단어.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걸까.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의학용어다. 몇 십번을 더 고뇌했을 그 의학자들의 노고가 담겨 있는 단어. 그러나 받아들이는 나와 같은 환자는 불안함에 불안함을 더해줄 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긴 환자들에게 도움 따위를 주려고 만든 용어가 아닐 테니. 그런데 왠지 지난번 보다 더 상태가 복잡해지고 더 치료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저런 단어가 붙지 않았을까 라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다.



DHCP

 R-CHOP보다 독한 녀석. 결코 친해지고 싶지 않은 소중한 친구다. 한번의 만남을 뒤로 했지만, 앞으로 한번 더 아니 어쩌면 두번 더 만나야 할 녀석이다.



히크만 카테터

 중심정맥관 3종세트를 모두 섭렵하다. 라고 어디가서 자랑해야 하는 건가 싶다. 두발이에 이어 세발이를 내 친구로 받아들였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그래 봐야 내 입만 아플 터. 어쨌거나 케모포트와 두발이로 인해 생겼던 흉터 옆에 또 다른 구멍이 뚫려졌고, 그곳을 세발이가 차지했다. 이곳에도 또 흉터가 남겠군. 흥. 아 그러고 보니 나쁘지 많은 않구나. 두발이를 보낼 때의 그 속 시원함을 얼마 후에 또 느낄 수 있겠군. 아싸라비아. 일단의 세발이는 반갑구나.



다시 시작

 또 다시 투별일기가 시작되었고, 다시 시작되는 투병일기인 만큼 화이팅으로 가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심과는 다르게 무거운 단어들이 자꾸 쏟아져 나와서 혼란스럽다. 지금의 내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은 까닭일테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밀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화이팅으로 가득해야 한다. 물론 나는 이 과정 또한 이겨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죽었음에도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다시 되살아난 바로 그 라자로 이므로.


201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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