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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속 사서함

송' 에게

james.ryu 2014. 2. 7. 23:07

그때 혼자서만 술을 마시게 만들고, 밤늦게 들여보낸 이후로 아직까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구나. 그 이후로 벌써 이만큼이나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이만큼 살아왔겠지. 내 안부를 먼저 전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너도 알고 있듯이 나의 안부라는게 전할 수 있을만큼 그렇게 안녕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 안부는 잠시 뒤로 미루어야겠다. 내 안부가 어느정도 안녕해 질때까지 말이다. 어때. 이정도는 당연히 이해할테지?

 

어떻게 잘 지내고 있었느냐. 신통치 않다며 다소 나직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던 너의 그 일들은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구나. 이렇게 궁금한 마음들이 생기는 것을보니 너의 그 삶의 무게가 이만큼 크게 느껴졌는가 보다. 근심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던 재수씨(이런 호칭은 영 익숙치 않다만, )의 건강은 어떠하고, 내 아이와 같은 이름을 쓰고있는 너의 시우는 그간 얼만큼 자랐는지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였다만, 그 시간동안에 해가 바뀌었고, 날씨의 변덕이 심했으며, 바다에는 기름이 흘렀고, 이산가족은 상봉하려하고, 이제 곧 동계올림픽도 시작하려 한다. 그만큼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어찌 그동안 안녕하셨는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우리의 처음 만남은 생각보다는 상당히 오래 되었더구나. 행신동에서였지. 우리보다 어린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을 때였다. 그때가 벌써 3년이 훌쩍 넘어 버렸으니 결코 짧지는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그 긴 시간동안 우리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있던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가까운 사이는 아니였던게 분명하겠지. 이 점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갑자기 궁금하구나. 하지만 그 궁금함은 뒤로하고 내 생각부터 얘기해 보자면 이렇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다. 이름과 나이와 연락처 뿐만 아니라, 서로의 성격이라던가, 가족 구성원이라던가, 술은 어느정도 마시는지, 그리고 당구는 얼만큼 치는지 정도는 알고 있지 않더냐. 그렇다고 우리가 친한 사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 형제가 어느정도 되는지, 생일은 언제인지, 학교는 어딜 나왔고, 좋아하는 음식이 어떤 종류인지 등에 대해서는 서로 잘 모르지 않더냐. 그러니 너와 나는 말이다.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중간에 있는 이른바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어떠냐 너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듣고보니 그렇지?

 

나는 말이다, 보통은 그렇다. 나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을 만나면 금방 친해지고,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친구라 부르면서 쉽게 어울리곤 한다. 술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드는걸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그렇게 쉽게 친구를 사귀고, 또 쉽게 사겼음에도 친구들간의 관계도 비교적 좋게 유지하는, 그렇게 서글서글한 성격을 갖고 있다. 주위사람들에게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크게 베풀것도 없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그 관계에 있어서는 진심을 담기 때문에 나의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많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송! 너에게는 어찌 그렇게 일반적인 내 모습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왜일까?

 

물론, 우리는 그동안 단 몇번 밖에 만난적이 없었다. 그것도 우리 단둘이서 만난적은 지난번이 처음이였지. 그러니 우리가 가까워 지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많이 모자랐을 것이다. 그나마 한탄강으로 캠핑을 갔을때는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했더랬지. 기억나니? 좀 오래된 일이여서 기억이 좀 가물해질 때도 됐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동안 몇번 만난적이 없었으니 그만큼 친해질 기회도 없었던게 당연하겠지. 그리고 또 변명을 조금 보태자면, 그간 숨가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둘이던 아이가 셋으로 늘어났으니 집안일의 강도가 엄청나게 높아졌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티 로동 바닥에 몸 담고 있는지라 바쁘디 바쁜 일들 속에서 허우적 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그만큼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모자랐다. 아마 나에게 시간이 많았더라면 진즉에 너에게 연락해서 술한잔 하자는 얘기를 했을것이다. 이거 정말이다. 믿어라 송.

 

그런데 너는 나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었다.

 

사실, 이 얘기를 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살포시 넘어갈까도 했지만, 이렇게 맘먹고 편지를 쓰고 있으니 얘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구나. 우리는 친한 친구라 말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에게 위로 받기를 바랬던 걸까. 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해다. 사실 그날은 마음이 많이 심난했고, 집에서도 그 심난한 마음을 해결할 길이 없었기에 무턱대고 집밖에로 뛰쳐나왔던 터였다. 그리고 딱히 갈곳도 없었거니와 날씨도 무척이나 추웠지. 그러던 차에 아 송에게 연락해야 겠구나 라고 생각했을까? 그것도 아니였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보니 이런저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너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더란다. 그리고 난 정말 아무생각없이 너에게 연락을 했었다. 어때 얘기를 듣고보니 좀 싱겁지 않은가? 그런데도 넌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고맙게도.

 

막상 연락하고 나서 곧바로 나오겠다던 너의 말에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만나서 딱히 할 말들도 없었고 만나고 나면 어색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아픈 것을 얘기해 줘야 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런데, 어? 라는 물음표가 절로 생길정도로 넌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주더구나. 머 딱히 어색하게 마주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단둘이서 아무런 어색함 없이 그렇게 스스럼없게 놀았던 적도 없었잖아? 그런데도 우린 딱히 어색함없이 어울렸고, 넌 술도 마셨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지. 고백하건데, 그 몇시간이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시간이였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과정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의 노력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 이제와서야 느껴졌다. 그래서 이렇게 고마운 마음이 생겨났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보내지도 않고 블로그에나 담아둘 편지를 쓰는 이유가 그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라니. 뭔가 재밌구나. 하하.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명확하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저 그랬던 평소의 일상들 처럼 그렇게 희미하게 지워져 버렸고, 그 분위기와 감정들만 남아있구나. 어쨌든 대화의 대부분은 건강에 관한 것이였지. 그러니 지금의 내 건강상태에 대해서 궁금해 할꺼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 소식은 잠시 접어두어야 겠다. 조만간 너에게 연락을해서 직접 안부를 전할 생각이다. 

 

알고 있듯이 나는 지금 투병중이다. 그리고 또 알고 있듯이 나는 지금 시간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넌 나에게 라디오를 권하기도 했지. 즐거운 생각만 하라며 아무생각 없이 그저 신나게 웃을 수 있는 라디오 프로를 권해주었던 그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라디오는 듣지 않고 있다. 라디오 어플은 깔았지만 서도. 그대신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래봐야 하루종일 영어공부를 얼마나 하겠나. 그저 조금씩 끄적거릴 뿐이지. 그러니 지금의 나는 남아도는게 시간이다. 그러니 이렇게 한가하게 편지도 쓰고 있는거 아니겠나. 아마 이런 여유로움이 없었다면, 이런 편지도 쓰지 못했을거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의 우리의 만남도 이와 비슷한 선상에서 이루어졌군. 그러니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는 나의 투병생활이 한몫을 단단히 한거다. 하하. 어쨌거나 난 너로인해 위로를 받았으며 그 마음을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이제 너를 친구라 부르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는 친구였다. 그러니 친구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무어가 그리 대단한냥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하는 걸까?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는 불알 두짝 차고 있는 남정내이고 이게 우리 남정내들의 방식이 아니겠냔 말이다. 그냥 친구라고 하는 것과 마음으로 친구라 여기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걸 말이다. 그러니 난 이제 너를 친구라 여기고 친구라 부르려고 한다. 어때 멋지지 않은가 친구?

 

날씨가 무척이나 춥다. 나에게는 이번 겨울이 지난 몇십년의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만, 너의 이번 겨울은 어떤지 모르겠다. 기왕이면 추운겨울에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상황들과 따뜻한 마음들로 가득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어렵다고 얘기했던 너의 일들도 쉽고 대박나는 일들이 됐으면 하고 바란다. 물론 너의 가족에도 평안이 가득하길 바란다. 쓸데없이 얘기만 길어졌구나. 내 조만간 너를 찾아갈 생각이다. 치료를 받는 중이므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난번 당구는 내가 완승했다는걸 기억해라. 후훗. 그러니 내가 이렇게 투병하고 있는 동안에 어디가서 연습이라도 충분히 해둬라. 어디 싱거워서 당구칠맛 나겠냐? 움핫핫핫.

 

새해다. 한해동안 기쁨만 가득하길 바란다. 물론 계획한 모든 것들도 이뤄지길 바란다.

 

나의 새로운 친구, 송'에게

201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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