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식을 받은지 정확히 50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의 주치의와 상의하여 이식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지난 12월 이였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마지막 선택지였고, 지금 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이 아이(저에게 찾아온 병을 저는 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를 떠나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로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오가며, 때로는 감사함으로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공여자를 찾는 것은 해운대의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 금반지를 찾는 것과 같은 놀라운 확률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기에 공여자를 찾는 과정에서 겪었던 그 걱정들은 저의 심장을 콩알만한 크기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졸이던 중 공여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정말 폭풍과 같은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힘들었던 여러 치료 과정을 거치고 이식을 받는 과정을 거치며 저는 다시 살아나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이 아웃포커스가 선명한 잘 찍힌 사진들처럼 분명한 현실처럼 느껴지다가도, 마치 흐릿하고 몽롱한 꿈속을 걷는 듯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실제 일어났던 현실들이며, 지금 저는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과, 그 살아있음을 감사함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해주신 것이 바로 제가 지금 이렇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감사함을 간절히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쓰고자 하였습니다.


 이맘때의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푸르렀고, 맑은 구름들이 하늘을 가득 매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하늘은 옛 기억 속의 하늘처럼 맑음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어 걱정이 앞섭니다. 요즘처럼 심각한 미세먼지 속에서 안녕을 전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안녕하세요. 인사가 상당히 늦었습니다. 당신의 귀한 한 부분을 이식받은 사람입니다. 당신께서 나눠주신 귀한 사랑으로 새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 사람입니다. 편지의 서두가 무척 길었습니다. 응당 인사말이 앞서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식을 받고 이만큼의 시간이 흘러서야 이렇게 인사드리게 됨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에게는 무척이나 힘들었던 시간들이었고, 그만큼 정신없는 시간들이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이 편지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나열되는 단어들이 무거운 단어 일색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궁금합니다. 어찌 아니 그럴까 싶습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인연이 이보다 귀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얼굴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어디에서, 얼마만큼을 살아왔으며, 어떤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아주 사소한 한 가지라도 모두 알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저의 욕심일 뿐이겠지요. 그러니 그 욕심을 내려놓겠습니다. 하지만 저에 대해서도 조금은 궁금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간단히 저에 대해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저는 올해로 40이 되었습니다. 월드컵이 있던 해에 출가하여 슬하에 3명의 아이를 두고 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 덕에 아직까지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예정이고, 둘째 아들과 막내딸은 사이좋게 같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아직 정정하시고, 저와는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 형님이 한 분 계시며, 두 명의 조카들도 무척이나 사랑스럽습니다. 아이티 노동 시장과 시멘트로 가득한 도시 생활에 익숙해있지만, 시골의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는, 아주 평범할 만큼 축 처진 어깨를 가진, 조그마한 IT 중소기업의 직원이자, 단란한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이렇게 짧은 몇 마디로 저와 저의 삶을 소개하려고 하니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듣고 보니 별로 대단할 것 없다 여기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주변에는 저를 바라보고, 저를 사랑하고,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며, 그 사람들로 인해 저는 사랑으로 늘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13년 11월에 처음 이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이후로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 아이와 함께한 여행들이 저에게는 매우 소중한 경험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제 일기 속에는 이 아이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겨 있지만,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이 더욱 많이 담겨있습니다. 그 여행들이 저에게는 인생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었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세상 어떠한 과외보다 더욱 훌륭한 과외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들을 통해 저는 그동안 알지 못 했던 소중한 것들을 깨달았고, 나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내가 무엇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당신께 고백합니다. 이것은 제가 지금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 모든 감사함과 제가 받았던 그 모든 사랑들로 행복하다 느끼는 것은 제가 지금 살아있음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당신께 고백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지금 살아있음이 결코 힘든 치료를 잘 견뎌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당신께서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생명의 은인이라고 당신을 부르려 합니다. 이렇게 몇 마디 말로만 감사하다 전하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제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으나, 그 삶 속에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간절히 당신께 전합니다. 이것은 저 뿐만 아니라, 저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가족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며 한없이 감사합니다. 


 유독 빨리 시작된 더위였지만, 지금부터는 정말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저는 지금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식 후에는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이런저런 합병증을 다스려야 한다고 하니 저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열심히 치료를 받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 더위 속에서도 덥다고 느끼지 못하며 시원한 병상에서 편하게 치료를 잘 받고 있습니다. 이제 곧 퇴원하면 이 여름 더위와 열심히 싸워야 하겠지만, 이 여름 더위쯤이야 시원하다 느낄 정도로 기분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항상 시원한 가을바람처럼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리라 믿습니다. 당신께서도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일들이 항상 대박으로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당신 주변의 모든 이들과 함께 늘 행복한 삶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선물을 한 아름 들고 찾아뵙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편지로 대신해야 하는 이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속상합니다. 그저 당신의 앞날에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저의 하느님과, 당신이 믿는 신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생명의 은인께, 아쉬움과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2016.06.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