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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새해가 시작되고 있구려. 이른 저녁부터 청했던 잠 덕분에 새벽부터 눈을 뜨고 이런저런 사색에 잠겨 있다보니 한없이 가라앉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오. 맞소. 청승이구려. 그래도 그 청승덕에 당신에게 편지를 한통 띄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오. 얼마전, 나의 두 번째 가족과 세 번째 가족 그리고 네 번째 가족에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오. 그런데 막상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가족에게는 선물은 고사하고 카드는 물론이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오. 그게 못내 미안했던 것 인지도 모르겠소. 첫 번째 가족이요? 물론 당신이라오. 그리고 새해가 떠오르려 하는 지금 아주 멀고 먼 곳에 혼자 떨어져 있기 때문임을 이해해 주길 바라오. 그러니 너무 청승이라 하지는 말아주오. 



 16년 새해가 떠올랐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미안한 마음이라오. 지금의 당신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사랑하오 가 아닌 미안하오 이기 때문이라오. 그래서,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미안한 마음을 한가득 품고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오. 이 미안한 마음을 설명하려 해도 그 설명이 필요없다고 느낄 만큼, 당신이 이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소. 허나 그것은 나를 위한 위로가 될 뿐이라오. 그러니 그 미안한 마음들을 모두 이 편지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오. 맞소. 이 또한 청승이구려. 어쩌면, 이런저런 핑계를 떠나서 나의 마음이 지금 공허한 까닭인지도 모르겠소. 그리고 지금 내 곁에 가장 필요하다 느끼는 사람이 당신임을 고백하고 싶었던 까닭이라오. 그러니 너무 청승이라 하지는 말아주오. 


 16년 새해가 떠올랐지만, 뿌연 구름과 미세먼지 솎에서 좀처럼 밝게 빛나질 못하는 구려. 누구에게나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이 있기 마련이라오. 어쩌면 우리에게는 지금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였을지도 모르겠소. 실제로 바로 얼마 전 당신의 반짝반짝이던 눈빛을 보았다오. 눈빛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 생기가 넘쳐났었다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숙원 해온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기대감이 충만하던 때였소. 그러한 당신의 반짝이는 모습들로 인해 많은 걱정들을 뒤로 하고도 앞으로 나아가길 바랬다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것을 내려 놓아야만 했을 당신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오. 그 심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당신의 그 고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또 다시 미안한 마음이라 말하고 싶소. 이런 까닭을 말하고 나니 이제는 청승이라 말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오. 그러니 너무 청승이라 하지는 말아주오.


 16년 새해를 홀로 맞이하오. 당신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지 못했음이 이 공허함을 더욱 크게 만드는 모양이오. 지금 이 순간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이 상황이 못내 서러운 모양이오. 그러나 누굴 탓할 수도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오. 모든걸 내려 놓았다고 생각 하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원망이 가득함을 고백하오. 왜 내가 이렇게 병에 걸려야 했는지 왜 지금 이 순간 다시 재발하여야 했는지 그러한 원망들 말이오. 그러다 보면 내 곁을 묵묵히 지켜지고 있는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 일어나게 된다오. 너무 상투적인 말일테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소. 그래도 우리는 지금 다듬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이오. 이렇게 다듬어지고 다듬어져서 조금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말이오. 어쩌면 우리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쓰시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다듬고 계신지도 모르겠소. 그렇게 다듬는 동안 견디고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신을 '아내' 라는 이름으로 내 곁으로 보내셨는지 모르겠소. 그러니 우리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그 시절이 아직 안온 것이라고 여기고 싶소.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이란 것을 알아주길 바라오. 그러다 보니 이런 변명들도 늘어 놓는 것 아니겠소. 


 16년 새해가 행복하길 바라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한 거라 믿었다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포함한 우리 가족 누구 한 명이라도 행복하지 않다면 나 또한 행복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소. 그 누구 한 명이라도 불행하다면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나 또한 행복하지 않을 것이오. 이러한 말을 하는 까닭은, 나의 지금 이 상황이 이토록 힘이 들지라도 당신이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오.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오. 그러니 난 정말 복된 사람이 아니겠소. 당신이라는 사람이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있어주니 말이오. 고맙고 고맙고 한없이 고맙소. 사랑하고 사랑하고 한없이 사랑한다오.


 16년 새해를 힘차게 맞이하오. 새해 첫날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무거운 편지를 쓰고 있다오. 미안하오. 그래도 이 또한 당신이기에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오. 어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희망을 말하지 못함을 미안하오. 당신을 위한 선물도 당신을 위한 그 무엇도 준비한 것 없어 미안하오.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비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일지라도, 우리의 종착역이 어느 곳이 될지 알 수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 남은 인생 동안 당신만을 사랑하며 당신에게 헌신하며 살겠다고 약속하겠소. 당신을 위해 더욱 많은 것을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겠소. 그러니 또 다시 이렇게 염치없이 당신에게 부탁하오. 조금 더 힘을 내주오. 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어 주길 부탁하오. 다시 한번 사랑한다 말하고 싶소. 사랑하오.


사랑하는 아내에게

2016년 새해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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