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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기억속에 아련히.

희미한 기억속에서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영화속에서는 비운의 여주인공이 골수 검사를 받기 위해 수술실 침대위에 누워 있었고 창백한 얼굴과 핏기없는 입술은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저세상으로 갈 것만 같은 헬쓱한 얼굴이었다. 수술실 밖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가득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술실 안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에 이내 사람들의 얼굴은 걱정과 안쓰러움으로 일그러져갔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아마도 최지우 였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김희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의 한장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병명은 이그젝틀리 백혈병 이였고, 이런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이였겠지.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때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에겐 저런 일이 없을꺼라고. 그저 아주 소수의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2013년 11월 26일.

오후 2시. 나는 심각한 표정의 내과의사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소화기 계통에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을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과의사가 보호자와 함께 왔느냐는 물음에. 아주 짧은 그 순간에. 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일들을 직감했다. 난 심각한 표정의 내과의사에게 처음으로 들었다. 내 몸에 소리없이 찾아온 손님의 이름을... 림프종.

 

 

그후로 3주.

폭풍같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오갔다. 내과에서 혈액종양과로 옮겼고, 일산병원에서 일산암센터로 옮겼다. 검사와 기다림 그리고 또 검사와 기다림 그리고 또 검사와 기다림. 이 기다림의 연속이 내 몸속에 찾아온 소님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불안했고 불안했으며 또 불안했다. 기다림이 이토록 힘든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검사결과가 아주 조금이라도 더 희망적이기를 바라고 바랬다. 하지만 결국  난 입원했고, 함암치료를 시작했다.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4기.

병원에 입원을 해서야 나에게 찾아온 손님의 정확한 이름을 듣게되었다. 실제로 뱃속에 거대한 종양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을 CT 화면에서 보았던 터였다. 그래서 거대 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여튼, 이녀석의 이름을 듣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왔던지. 일단은 반갑게 맞이해 주련다. 앞으로 나와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동거동락해야 할 녀석 이므로... 그리고 내가 반드시 이겨내야 할 녀석이므로...

 

그러고 보니 이녀석의 이름을 듣기까지 참으로 많은 희생을 치뤘구나. CT 촬영을 세번, 방사선을 어마어마하게 받아야 한다는 PET CT를 한번, 그리고 조직검사를 위해 목덜미 안에서 종양덩어리도 때어냈고, 골수도 뽑아서 검사했더라지. 피도 엄청나게 많이 뽑았구나. 심전도검사 폐검사 심장검사 등등...  이 많은 희생을 치뤄서 알게된 녀석이니 이 얼마나 반가운 녀석인가 말이다. 나의 소중한 간까지 스며들고 내 소중한 골수에까지 사무친 반가운 손님. 그래서 더욱 특별히 4기라는 별명까지 붙여준 손님이다.

 

 

장모님.

아내 이외의 다른 가족들에게 나의 병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장모님이 처음이였다. 검사결과가 다 나오지 않았던 그 전부터 말씀 드렸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셨다. 초진과는 다르게 아주 약하게 조금만 치료하면 낫을 수 있을 정도로 최종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러던 어느날 주방에 한가득 놓여진 견과류를 보았다. 암환자에게 좋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으셧단다. 그리고는 한걸음에 경동시장까지 다녀오셨다 한다. 그 마음에 난 감사하였지만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난 왜 늘 장모님께 감사하단 말씀을 잘 못드렸던 걸까. 이제는 아예 버릇이 되어 버린걸까. 감사하단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더 없이 감사함을 느낀다. 어디 그 뿐만이랴 말없이 많은 희생을 해주시는 분이시다. 집안일에 아이들 돌보는 일까지 말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더 빨리 건강을 회복 해야만 한다. 감사하고 한없이 감사하므로...

 

 

엄마. 그리고 아빠.

입원날짜를 받았고. 조금의 희망마저 포기하게 만든 의사선생님과의 만남이 있던 뒤였다. 아내가 말한다. 이제는 어머님 아버님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늦은 저녁시간에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우황청심원이 필요하다던 아내의 말을 듣고 약국도 들렸던 터였다. 우려와 달리 덤덤하신 두분이셨다. 우황청심원이 필요없었던 탓에 들고갔던 봉투 그대로 다시 들고나와야했다. 물론 걱정어린 격려와 당부가 오고갔으며, 힘내서 잘 이겨내겠노라는 다짐에 다짐을 두분 앞에서 해드렸다. 두분이 안심하시길 바랬다.

 

2틀전이였다. 병실로 반가운 손님들이 병문안을 오셨다. 그분들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중에 엄마 얘기가 나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빠는 내가 듣고 있는 앞에서도 아랑곳 않으시고 손님들과 함께 엄마 얘기를 하셨다. 그날 저녁 밤새도록 우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 들이신 줄로만 알았던 두분이서 그렇게 한없이 울고 또 우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아들을 위해서 오늘만 울고 앞으로 절대 울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셨다고 하셨다. 난 소리없이 울었다. 어디간에 있을 우황청심원이 떠올랐다.

 

 

6개월의 병가

입원하는 날을 기준으로 6개월의 병가를 받았다. 최소 6개월 이상을 치료받아야 한다고는 했지만, 왠지 그 이상으로 병가를 내면 마음가짐이 약해질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빨리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고 해두자. 하지만 조금더 길게 병가를 냈어야 하는 후회가 아주 조금은 남는다. 흔쾌히 병가를 내주시고 병가 기간동안 몇가지 지원을 약속해 주신 사장님이시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내가 남겨놓은 수많은 일자리와 내 빈자리를 채워주신 연구소 소장님과 김군. 그들의 말없는 희생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에 절로 숙연해진다. 완쾌되서 돌아온 날부터는 그동안에 못했던 일까지 일점오배로 더욱 열심히 일하겠노라는 립써비스를 빼놓을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이제부터 시작

서론이 길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무언가 정리하고 싶었다. 주절주절 적었지만, 정작 내가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 대해서 말이다. 너무나도 길고 긴 얘기가 될 것임에 분명하므로 다음 일기로 미뤄야겠다.

 

정말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미 1차 항암치료를 받았고 잘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이미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잘 싸워 나갈련다. 6개월이라니. 그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고작 6개월의 시간앞에서 무릎꿇을 내가 아니다. 그 힘들다는 조직 검사도, 골수 검사도 다 이겨냈지 않았느냔 말이다. 까짓거 별거 아니더라. 건강만 되찾을 수 있다면야.

 

그렇지만 또 6개월이라는 시간이 그토록 짧지많은 않을 것이다. 반년이라는 시간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 기간동안에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기록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병간호는 내가 제일 잘해야 할테니 말이다. 암환자에게는 약물에 대한 반응부터, 먹는거 하나하나까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잘 챙겨야 한다는군. 그러니 꼼꼼히 기록해 두고 그때그때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투병일기를 잘 써나가야겠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링프종 투병일기를 시작해 봅세다! 뽜이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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